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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Mar 08. 2024

3. 제육볶음, 생일날 아들 커플에게 맛있는 행복을 선

3. 제육볶음생일날 아들 커플에게 맛있는 행복을 선사하다         

      

  K의 아들은 결혼을 6개월 앞뒀을 즈음 집 근처 임대아파트로 분가를 했다. 아들이 분가한 지 두 달이 된 8월에 K는 생일을 맞았다. K의 아내는 열흘 전 호주 딸네로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K는 생일날 저녁에 아들 커플을 집으로 초대했다. 아들과 서진은 네 달 뒤 12월에 예식이 잡혀 있었다.

  K는 아들의 여자친구가 함께 오는 것이다 보니 신경이 꽤 쓰였다. 전날 집 안 청소와 함께 화장실 청소도 락스로 깨끗이 해놓았다. 함께 살던 시절과 달리 분가한 상태이다 보니 아들도 손님이었다. K에겐 아들보다 예비 며느리를 더 소중히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는 하루 전 메인메뉴인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재료를 미리 사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들 커플은 7시 20분에 도착 예정이라고 했다. 중학교 교사인 K의 퇴근은 4시 30분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는 것 같아서 K는 교무실에서 책을 더 읽다가 5시가 넘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던 도중 샤워하는 시간을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K는 마음이 분주해졌다. 페달을 부지런히 밟아 20분 만에 집에 도착한 그는 샤워를 빠르게 해치웠다.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였다. 돼지고기 삼겹살과 앞다리살 두 근을 7종 양념(고춧가루, 고추장, 마늘, 간장, 맛술, 설탕, 매실청)에 버무리는 데만 20여 분이 걸렸다. 돼지고기 양념을 재워둔 뒤 콩과 잡곡을 듬뿍 넣고 압력밥솥에 밥을 앉혔다.


  쌈채소 씻은 시간을 계산해 두지 않았다는 생각에 K는 손을 더 재빠르게 놀렸다. 양파 세 개의 껍질을 벗기고 감자 5개 껍질을 깎았다. 버섯류를 썰어 놓고, 파를 세 단 썰어 놓은 후에야 재료 준비를 마쳤다.

  제육을 볶기 전 된장찌개를 먼저 끓였다. 우렁을 듬뿍 넣고 채소류를 넣어 부글부글 끓이는 동안 K는 쌈채소를 물로 씻었다. 상추와 깻잎, 모둠 쌈채소를 부지런히 씻어 놓았다. 손님맞이용 접시를 5개 꺼내 반찬 담을 준비도 해놓았다. 서두른 덕분에 아들 커플 도착 30분 전 제육을 볶을 수 있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연신 제육을 볶고 있는데 아들이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서진이 15분 뒤 도착하면 상을 차릴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아들이 여자친구가 15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K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하는 동안 쌓인 그릇들을 설거지할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식사 후에 아들 커플이 설거지하겠다고 나서도 K는 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처음 K의 계획은 식사를 차리기 전에 설거지를 끝내 놓는 것이었다.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여의치 않은 상태였는데 때마침 서진이 알맞게 늦는 셈이었다.

  “서진이한테 천천히 오라고 해.”

  아들에게 그렇게 말한 뒤 K는 천천히 설거지를 했다. 딱 15분 분량의 설거지 양이었다.


  서진은 예고한 시간보다 10분 더 늦었다. 도로가 계속 막힌 모양이었다. 7시 45분쯤 서진이 도착했을 때 K가 크게 말했다.

  “서진아! 딱 맞는 시간에 도착했어.”

  서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K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K의 아내가 만들어 놓은 반찬들과 K의 된장찌개, 제육볶음으로 셋이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서진은 “아버님, 너무 맛있어요”라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아들은 제육볶음을 맛있게 먹었다. 서진은 제육도 맛있지만 된장찌개가 더 맛있다며 세 번이나 퍼다 먹었다.     

  서진과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K는 늘 흥겨운 대화를 나눴다. 교회 주보에 K가 쓴 글에 대한 이야기, 일주일 전 청년수련회 때 K가 소그룹 강사로 갔던 이야기 들을 재미있게 나눴다.


  한결이 추석 때 예비 처가 친척들 모임에 가서 인사드리러 가는 일이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K가 아들의 마음에 공감해주며 말했다.

  “인간의 뇌는 예상되지 않은 일을 맞닥뜨리게 될 때 불안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구.”

  한결은 몇 주 전에도 지방으로 서진의 외할머니 댁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고 했다. K는 아들에게 “추석 때 친척 모임 가서 한꺼번에 인사드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한결도 그런 것 같다고 동의를 했다. 아들은 친척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던 우리 집 문화와 다른 처가의 문화에 살짝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 문화에서 나온 살갑고 싹싹한 성격의 서진을 아내로 맞게 되었으니 기꺼이 감수해야 할 부담일 터였다.     

  한결과 서진은 청소 주기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컴퓨터 방에 머리카락 등이 떨어져 있어도 아들은 일주일 뒤 한꺼번에 청소하면 되겠거니 하는 스타일이었다. 서진은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치우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차이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집안일에 대해 적절히 분배를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아들은 요리와 설거지, 분리수거, 등을 맡고 있었다. 서진은 집안 청소와 화장실 청소, 빨래 등을 맡고 있었다.


  K가 웃으며 아들 커플에게 말했다.

  “결혼을 앞둔 너희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 ‘사랑은 노동이다.’ 가사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많이 사랑하는 거야.”

  K는 두 해 전 딸과 사위가 결혼할 때 해줬던 이야기를 아들 커플에게도 들려주었다.

  “부부는 결국 집안일 때문에 갈등을 겪고 싸우게 돼. 가사노동을 절반씩 나눠서 하는 게 공평하겠지. 하지만 5대 5으로 정확히 나누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아들은 ‘아버지가 또 그 얘기하는구나’라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서진은 귀를 쫑긋하며 K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가사노동을 5대 5로 하겠다고 하면 서로 싸우게 될 수밖에 없어. 내가 한 집안일은 다 알 수 있지만, 배우자가 한 집안일은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야. 나는 상대방이 4를 했다고 느끼지만, 상대방은 5나 6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


  서진의 얼굴에서 기대와 만족의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6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하는 거야. 상대가 4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면 실제로 5대 5가 될 거라고 나는 믿어.”

  요즘 K는 집안일을 6을 하기로 마음먹고 실천하고 있었다. 요리를 거의 맡아서 했고 설거지도 언제든 마다하지 않았다. 청소와 분리수거도 K의 몫이었다. K의 아내는 가끔 반찬 만드는 일과 빨래, 화장실 청소 등을 맡고 있었다. 아내도 지인들에게 남편에게 여왕처럼 대접받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K의 노동을 인정하고 있었다. K는 아들이 자신 못지않게 요리와 설거지 등을 맡으며 노동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밥을 먹고 난 뒤 케이크를 준비해놓고 호주의 아내와 딸, 사위와 영상통화를 했다. K는 영상으로 아들 커플이 선물해준 스마트워치를 자랑한 뒤, 촛불을 밝힌 케이크 앞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들었다. 핸드폰을 매개로 여섯 식구가 모처럼 한데 모여 즐겁고 살가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생일 축하 파티를 마친 뒤 K는 아들에게 제육볶음 남은 걸 통에 담아 주었다. 쌈채소 남은 건 아들이 알아서 비닐 팩에 담아 챙겼다. 서진이가 주방으로 다가와 “아버님, 제가 설거지 할게요”라고 말했다. K가 서진을 만류하며 말했다.

  “우리 집에선 설거지하지 않아도 돼. 손님은 설거지하지 않는 게 나의 원칙이거든.”

  서진의 얼굴에서 감사의 미소가 번졌다.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저번에 우리 집으로 부모님 초대했을 때도 설거지까지 내가 다 했잖아.”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걸 굳이 여자친구의 쉴드를 쳐주는 아들이 살짝 어이없었지만 K는 그래도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건 한결이 말이 맞아. 설거지는 초대한 집에서 하는 거로.”


  K가 예비 며느리에게 말했다.

  “나는 사위한테 했던 것처럼 서진이한테도 똑같이 할 거야. 사위 왔을 때 설거지 안 시켰으니까 서진이한테도 안 시키는 게 맞지.”

  서진은 감동이 가득한 얼굴로 기쁘게 웃었다. 아들 커플은 제육볶음 통과 쌈채소 비닐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K는 ‘엄마 마음’이 되어 뿌듯한 만족감을 느꼈다. 부모는 자식들이 잘살아주기를 바라며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는 존재여야 한다고 K는 믿고 있다. 정말로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저 잘 살아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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