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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Mar 05. 2024

2. 만두전골, 딸의 노예가 되고 싶은 아버지의 사위

   

           

  K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정말로 며느리에게 친정엄마가 같은 시아버지가 되고 싶은가?’ K의 답은 ‘되고 싶다’였다.

  두 해 전 딸과 사위가 호주에서 귀국했을 때 K는 딸 부부를 극진히 대접했었다. 그랬던 K가 딸이나 사위와 다르게 며느리를 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며느리에게 친정엄마 같은 시아버지가 되는 것은 K에게 기본에 해당하는 일이기도 했다.   

  

  호주의 딸 부부가 한국에 왔을 때 K는 스스로 요리와 돌봄 노동을 맡기로 마음먹었다. 일 년 전 호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딸과 사위는 한국에 온 김에 결혼식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두 달 뒤 토요일 저녁 시간으로 예식장을 잡았고, 결혼식 준비에 관한 모든 일은 아내가 총괄하게 되었다. 그 방면에 젬병이었던 K는 집안일을 전담함으로써 아내와 딸 부부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딸 부부는 귀국했던 날 공항에서 짧은 만남을 가진 뒤 바로 세종의 시가로 내려가 열흘 동안 코로나 자가 격리를 했다. 격리를 마치고 딸 부부가 서울로 왔을 때 초등학교 교사인 K의 아내는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 출근 기간이었다. 

  K는 딸과 사위가 온 첫날 저녁에 만두전골을 끓여 주었다. 만두와 소고기, 배추와 쑥갓, 각종 버섯들을 넣고 푹 끓인 뒤 새우젓과 간장으로 간을 하면 되는 요리였다. 사위는 장인이 만든 만두전골을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두 그릇이나 뚝딱 먹어 치웠다. 만두전골은 K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애석하게도 K의 가족 중에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만큼 만두전골을 좋아하는 사위를 만난 K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쁘고 좋았다.     


  K의 요리 스승이었던 아내의 요리는 이미 열흘 전 귀국하던 날 세종으로 한 상자가 내려갔었다. 간장게장, 꽃게무침, 소갈비, 감자샌드위치 등 딸이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두 해 전 아내가 호주에 갔을 때 해준 음식들이어서 사위도 그 맛을 알고 있었다. 사위가 특히 감자샌드위치 맛을 잊지 못했던 것 같았다. 공항 주차장에서 작별한 뒤 세종과 서울로 돌아가던 길에 사부인으로부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사부인, 지금 사위가 울고 있어요. 감자샌드위치 먹다가 너무 행복하다면서 울어요.”

  그 말을 들으며 K는 ‘설마! 그랬겠어? 눈물이 날 정도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겠지’라고 생각했다. K의 사위는 그때 감자샌드위치를 먹으며 진짜로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고 했다. 고국 땅에서 먹는 감자샌드위치의 맛이 사위의 심금을 울렸던 것 같다. 감자샌드위치는 K도 거들어 만든 음식이었다. 감자와 달걀을 삶아서 으깨는 일은 아내가 맡았고, 오이와 양배추, 당근을 잘게 썰고 맛살을 찢는 일은 K가 했다. 커다란 그릇에 감자와 달걀, 오이, 양배추, 맛살 등을 넣고 마요네즈를 듬뿍 버무려서 완성되는 감자샌드위치 소스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음식 중 하나였다. 사위의 눈물을 뽑아낼 만큼 정성과 공력이 많이 드는 음식이었다. K는 사위가 호주로 떠나기 전 한 번 더 만들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월요일이었던 다음 날 K의 아내는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K는 9시쯤 일어나 된장찌개 끓일 준비를 했다. 딸과 사위는 건넌방에서 자고 있었다. 양파를 까고 있는데 어느새 깼는지 은결이 살며시 다가와 등 뒤에서 K를 안으며 말했다.

  “아빠, 사랑해.”

  엄마가 부재중인 상황에서 아버지가 맛있는 된장찌개를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고 안심되고 기뻤던 모양이었다. K는 새삼 음식을 해 먹이는 일이 얼마나 사랑의 본질에 가까운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출근한 뒤 은결이 음식을 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버지에게 이런 사랑 표현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아내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K가 차려 주기만 했더라도 딸이 이토록 진한 고마움을 느낄 수 없었을 터였다.


  아버지가 딸과 사위를 위해 감자를 까고 양파를 벗기고 버섯과 파를 써는 모습이, 된장과 몸을 섞은 감자와 버섯 등이 끓으며 나오는 구수한 향내가 딸의 가슴에서 사랑이 샘솟게 만든 것이었으리라.

  장인이 끓여 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는 사위를 보면서 K는 벅찬 행복감을 느꼈다. 조금 과하게 맛있다고 감탄하는 사위를 딸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부부를 보면서 K는 ‘아, 내가 이 애들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이런 게 사랑이구나’라고 느꼈다.          



  다음 날 아침엔 K가 해물카레를 만들어 주었는데, 사위가 두 그릇을 뚝딱 먹어 치웠다. K는 나중에 사위가 “카레 더 먹을 수 있는데 배가 불러 더 못 먹었다”며 한탄스러워 했다는 말을 딸에게 전해 들었다.

  전날 아침엔 딸이 된장찌개에 넣을 감자와 버섯과 호박, 양파 들을 썰어주며 요리를 함께해 주었었다. 그날 아침엔 일찍 일어난 사위가 환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와 도우미를 자처했다. 싹싹하게 행주로 상을 닦고 수저를 놓고 반찬들을 차리는 사위의 모습에 K는 든든함과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런 사위를 만나게 해주신 신의 은총에 감사가 절로 나왔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자신보다 더 맛있게 먹어주는 사위를 보면서 K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기쁨과 보람이 배가되는 걸 느꼈다.


  카레를 저으면서 K는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사위에게 들려주었다. ‘호주로 유학 간 은결이 방학을 맞아 돌아오면 무엇으로 기쁘게 해줄까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딸이 오기 전 유튜브로 해물떡볶이와 토마토 스파게티 만드는 법을 연구했다‘, ’그 해 딸이 귀국했을 때도 아내는 출근이었고 나는 겨울방학 중이었다‘는 등의 K 이야기를 사위는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아침에 스파게티를 만들기 위해 양파를 기름에 달달 볶는데 그 고소한 향내가 너무 좋은 거야. 알 수 없는 행복감이 막 느껴지더라고. 그 냄새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어.”


  기분이 좋아진 K는 사위에게 요리 입문기를 계속 떠들어 댔다. 그즈음 미국 여성이 쓴 책에서 자신이 지쳐서 부모님에게 갈 때마다 아버지가 보양식으로 생선찜 요리를 해준다는 글을 읽고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은 바람을 갖게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요리는 남자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의 틀을 깨지 못하다가 아들이 요리학원을 다니며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그 틀을 깨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을 사위는 끝까지 잘 들어주었다. 이어진 사위의 말에 K는 큰 감동을 받았다. 

  “저도 아이가 생기면 아버님처럼 유튜브로 요리를 배워서 맛있는 걸 해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두 달 뒤 호주로 돌아간 사위는 유튜브로 비프스테이크와 메밀소면 등을 만들어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남편이 되었다. K의 딸은 남편이 스테이크 등 스페셜 요리를 척척 만들어 내며 손님 접대 음식을 도맡아주는 것을 크게 고마워했다.

  6개월 뒤 호주의 딸로부터 K에게 이런 카톡이 왔다.

  ‘아빵~ 아버지께서 요리를 즐기며 맛있게 재밌게 보람차게 하시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셔서 사위가 잘 보고 배우는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사랑해요~’

  그 문자를 본 K는 6개월 전 자신이 쏜 화살이 정확히 과녁에 맞았다는 걸 알고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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