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딸 부부는 3일 차에도 늦잠을 잘 자고 있었다. K는 몇 해 전 딸에게 처음 해줬던 요리인 해물떡볶이를 늦은 아침으로 준비했다. 자연드림에서 사온 모둠해물의 오징어, 홍합, 바지락 들을 가득 넣었고 꽃게까지 몇 조각 풍덩 넣고 팔팔 끓였다.
어느새 일어난 딸과 사위와 함께 K는 해물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다.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으니 좋은 맛이 날 수밖에 없었다. 사위와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K는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쁨을 느꼈다.
아침을 먹고 난 사위는 설거지를 하고 싶어 했다. 딸 부부가 온 후로 사위가 설거지를 하려 할 때마다 극구 만류하며 K가 하거나 K의 아내가 했다. 딸은 친정이라고 설거지나 청소에 신경을 아주 끄고 지냈다. 하지만 사위 입장에서는 대접만 받는 일이 불편할 수 있었다.
“오늘은 설거지할 게 적으니까 제가 할게요, 아버님.”
사위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 K는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십여 년 전 미국 처남네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K의 마음도 그랬다. 3주 동안 극진히 먹여 주고 재워준 처남 가족에게 뭐라도 돕고 싶어서 청소를 자처했었다.
“그래, 설거지 해. 뭐라도 도움이 되는 게 마음이 편한 거니까.”
K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위는 신이 나서 설거지를 했다.
K는 안방으로 들어가 <NVC(비폭력대화) 2기 원격 연수>를 줌으로 수강했다. 그동안 딸과 사위는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1시간 동안 강의를 듣고 중간 휴식 시간에 나와 보니 딸 부부는 체크카드를 만들기 위해 외출한 상태였다.
전날 K는 딸 부부가 세종 시가에서 자가 격리하는 동안 어느 정도 집안일을 했는지 물어봤었다. 이따금 딸이 설거지만 조금 할 정도로 집안일을 거의 시키지 않으신 듯했다. 시부모님이 출근하셨을 때 청소도 가끔 시키셨다고 했다.
스무 살에 유학을 간 이후 K의 딸은 집에만 오면 무위도식하며 지냈다. 방학 전 영상통화를 하다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딸에게 K는 “집에 오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줄게”라고 달래주곤 했다. 고교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떠났던 K의 딸은 집에서 늘 그렇게 지냈다.
K에게는 딸이 널브러져 지내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랬기에 사위에게도 설거지를 시키지 않는 게 맞다고 K는 생각하고 있었다.
전날 K는 딸 부부에게 어느 정도의 일을 시키는 게 좋은가에 대해 아내와 대화를 나눴었다. K 부부는 청소 정도는 시키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K의 미국 처남네 경험에 비춰보면 그게 사위 마음도 편하게 할 듯했다. 그랬는데 아침에 사위가 설거지를 하고 싶다고 하도 간청을 하여 그만 설거지를 넘겨준 것이었다.
K는 남은 연수를 듣고 난 뒤 카페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딸 부부에게 청소를 시키는 일이 마음에 걸렸다. 청소를 하게 된다면 사위가 하게 될 터였다. 그 생각이 들자 K는 청소기를 들고 바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저녁에 귀가한 K가 청소를 한다면 사위가 자신이 하겠다며 청소기를 뺏어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K는 딸을 공주처럼 돌보고 싶다면 사위도 그만큼 극진히 대하는 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비폭력대화> 줌 연수를 들으며 K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줌의 소모임에서 만난 ‘햇살’님에게 K는 햇살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구정을 지낸 후여서 두 사람은 명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K를 감동의 도가니에 빠트린 건 햇살님이 아니라 햇살님의 시어머니였다.
대장금 급으로 요리를 잘했던 햇살님의 시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이는 걸 즐기는 분이었다. 세 자녀가 두 주에 한 번 정도 시어머니 댁을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마다 시어머니는 셰프급 요리를 대접하시면서 설거지도 직접 하셨다. 누가 설거지를 할라치면 말리며 이렇게 말하셨다고 한다.
“설거지 같은 걸 하면 엄마 집에 오기 싫어지지 않니.”
햇살님은 지난 구정 때도 시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요리를 맛있게 먹기만 하다가 틈을 노려 딱 한 번 설거지를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K는 칠십 대의 한국 시어머니 중에 그런 분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앞서가고 계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K는 햇살님의 시어머니를 롤 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딸 부부든 미래의 아들 부부든 그의 집에 오면 맛있게 먹고 즐거움과 휴식만 누리다 가도록 하자고, 힘이 닿는 데까지 자식에게 주는 걸 좋아하는 부모가 되자고 K는 다짐했다.
K는 사위를 보면서 자신을 보는 것 같을 때가 종종 있었다. 장인이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사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마워했다. 딸처럼 당당하게 받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장인에게 대접받는 걸 어려워하는 마음이 소중해 보이기도 했다.
딸을 보면서 K는 사랑하는 능력보다 사랑받는 능력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딸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는 만큼 그의 사랑이 커지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공주처럼 받을 줄 알고 누릴 줄 아는 딸 덕분에, 그만큼 K에게서 깊은 사랑이 나오는 것이었다. 딸에게는 기꺼이 노예가 되고 싶은 게 아버지로서 K의 마음이었다. 사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노예가 되고 싶은 사랑―이보다 더 깊은 행복과 강렬한 기쁨을 얻는 일이 없을 거라고 K는 생각했다.
그래도 가끔은 당연한 듯 받아먹는 딸보다 과하게 감사를 표하는 사위가 더 예뻐 보일 때가 있었다. 사람 마음이 그랬다.
*
K의 딸 부부는 결혼식을 3주 앞둔 주일에 한국에 들어온 이후 처음 교회 대면 예배에 참석했다. 그동안은 코로나로 인해 유튜브로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난 후 담임목사님이 K의 딸과 사위를 나오게 하여 교인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K의 사위가 신중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이렇게 좋은 공동체에서 따뜻하게 맞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이 신부 자랑을 하나만 해보라고 했다. 예상치 못했던 질문 세례에 사위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딸이 옆에서 귓속말로 뭐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목사님이 “영어로 말해야 하나?”라는 말로 교인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사위가 조금 머뭇거리는 말투로 천천히 대답했다.
“음… 집에서 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때 가장 사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이번엔 신부의 단점을 하나만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K의 사위는 다시 당황하여 어찌 답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앞쪽에 앉아 있던 권사님 한 분이 정답을 알려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난 사위가 바로 대답했다.
“아직 못 찾은 것 같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교인들이 다시 크게 웃었다.
목사님은 이번엔 K의 딸에게 남편의 장점을 하나만 말해보라고 했다. 은결이 생글거리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저를 잘 챙겨주고요, 자상해요. 그리고 섬세해요.”
그 말을 듣던 딸 친구 어머니가 혼잣말로 말했다.
“하나만 하라고 했는데 세 개씩이나 얘기하네, 호호!”
K의 딸과 사위는 참 딱할 정도로 착하고 순해 보이는 커플이었다.
“여러분, 제가 비밀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과 사위가 온 뒤 아내가 출근하게 돼서 손 집사님이 딸과 사위에게 아침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갑자기 며칠 전 K과 나눴던 이야기를 꺼냈다.
“K 집사님이 아침을 차려주시면서 딸에게 평생 노예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을 맺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자식에게 썩어지는 밀알이 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말을 들으며 K는 ‘이제 공식적으로 딸의 노예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이 또 재미있는 말로 교인들을 웃겼다.
“그때 제가 K집사님에게 물었어요. 딸에게 그런 것처럼 사위에게도 노예가 되고 싶으시냐고. 그랬던 집사님이 그건 아니라도 답하시더라구요, 하하.”
‘당시엔 멋쩍어서 그렇게 대답한 것이지 진심은 아니었는데…’ K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도 교인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이야기한 것이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예배를 마친 후 K의 아내와 친한 후배 박 집사가 다가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사위가 너무 마음에 들어. 딱 내 스타일이야. 난 저런 남자가 좋아.”
박 집사가 사위에게 왜 반했는지 K는 알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사위의 첫인사는 그리 매력적이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것이었다. 조금은 어눌한 듯했고 지나치게 조심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K는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사위의 조심하는 태도에서 진중함과 겸손함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K는 며칠 전 책에서 읽은 ‘조심’의 한자가 떠올랐다. 조심(操心)의 조(操)는 ‘손(手)으로 나무(木) 위의 새를 쥐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조심은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이었다. 머뭇거리며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고르는 사위의 모습에서 K는 새를 쥐듯이 아내를 소중히 대하는 태도가 엿보였다.
잠시 뒤 교회 마당에서 마주친 정 선교사님이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K에게 말했다.
“집사님이 딸에게 노예가 되고 싶다고 하신 마음을 같은 아버지로서 알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과 K는 미소를 주고받으며 딸의 노예가 되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서로 공감을 나눴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딸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는지를 아는 아버지들의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