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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Mar 01. 2024

1. 참치회 정식, 결혼을 앞둔 아들의 미친 손맛

친정엄마 같은 시아버지 되기

  K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딸이 호주에서 귀국했다. K의 사위는 새 직장에서 필수 교육을 받느라 이번엔 동행하지 못했다. 여동생을 환영하기 위해 오빠 한결이 저녁 초대를 했다. K의 아내와 딸 은결은 쇼핑을 하고 난 뒤 바로 아들 집으로 간다고 했다. K는 아내가 만들어 놓은 양념꽃게 통을 들고 아들네로 향했다.

  집에서 꾸물거리다 출발한 K는 아들네 아파트에 5분 늦게 도착했다. 아내와 딸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아들은 참치를 분주하게 손질하고 있었다. 유튜브로 참치 정식 요리법을 배워 직접 참치회와 마끼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한결은 며칠 뒤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예비 신부 서진은 회사 일로 조금 늦는다고 했다. 5분이 더 지난 뒤 서진이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해요. 제가 오늘부터 2주 동안 휴가여서 업무 마무리하고 오느라 늦었어요.”

  K가 웃으며 말했다.

  “잘했다. 마무리는 잘해주고 와야지. 서진아, 나도 5분 늦었어.”

  한결이 은결을 불러 초밥 비비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 근 2년 만에 만난 오누이는 모처럼 사이가 좋았다. 은결이 양념된 밥을 쓱싹쓱싹 비벼서 초밥을 완성시켜 주었다. 한결이 돌 받침 그릇에 참치회와 방어 회를 가득 담아 식탁에 차렸다. 이어서 참치 마끼가 듬뿍 담긴 그릇을 올려놓았고, 회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를 위한 생선구이까지 더해져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자, 제가 먹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한결이 김 한 장을 손바닥에 올린 뒤 참치 마끼를 듬뿍 떠 넣고 잘 말아 입에 넣었다. K도 아들을 따라 김으로 참치 마끼를 말아 먹었다. 입안에서 터지는 풍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5만원짜리 참치 정식 요리 못지않은 맛이었다. K의 입에서 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서진아! 네가 정말 부럽다. 이렇게 맛있는 걸 해주는 남자와 결혼하다니!”

  서진이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말했다.

  “네! 아버님, 너무 좋아요. 전 매일 너무 행복해요!”

  참치 회를 고니와 함께 김에 싸서 먹고 난 순간 K는 서진이 더 부러워졌다. 부드럽고 고소한 육즙과 감미로운 맛이 뇌를 황홀경에 빠트렸다. 아들 커플은 가사 분업 궁합이 잘 맞았다. 한결은 요리와 설거지를 전담했다. 깔끔하고 정리를 좋아하는 서진은 청소와 빨래를 맡고 있었다. 둘은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로 가사 노동 부담을 크게 줄이는 현명함도 갖추고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이 예비부부는 결혼식 전까지 몇 달 동안 반동거하면서도 성관계는 하지 않으며 지내고 있었다. K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들 커플의 남다른 신앙심과 절제력에 깊은 존경을 느꼈다.     

  입에 들어갈 때마다 맛이 터지는 요리와 즐거운 대화로 K의 가족은 맛있는 행복을 만끽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한결과 은결이 어렸을 적 대화 패턴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매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 이겨 먹으려고 다투는 일이 잦았다. 힘의 균형이 너무 비슷했다고 할까. K 부부가 지나치게 어린 딸 편을 들었던 것이 오누이의 잦은 다툼의 원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훨씬 훗날의 일이었다.

  기쁘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둘이 살짝 티격태격하는 말들이 오가곤 했다. 결혼 3년 차인 딸이 결혼 선배라는 걸 내세울 때 아들이 “자식아”라고 타박을 주는 식으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을 보던 서진이 웃으며 말했다.

  “한결이랑 은결이가 너무 똑같은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지고 싶지 않은가 봐요. 너무 귀여워요, 호호….”

  서진은 은결과 달랐다. 한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기뻐해 주었다. K는 아들이 포용력 있는 아내를 맞게 된 것이 너무 감사했다. 한결은 두 달 전 집 근처 임대아파트에 당첨되어 이사를 했다. 그때 소파를 사는 일로 고심할 때 K는 한결과 서진의 대화를 살짝 엿들은 적 있었다. 적절한 소파 고르는 일에 지친 아들이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힘들어하는 표현을 했을 때였다. 서진이 밝은 목소리로 한결에게 말했다.

  “그래, 그래. 천천히 생각해 보자. 다음에 정해도 되잖아.”

  서진의 목소리는 한결을 포근히 품어주는 목소리였다. 살짝 짜증이 났다가도 이내 풀어질 수밖에 없는 따뜻함이 서진의 목소리에 깃들어 있었다.     

  참치와 방어를 푸짐하게 먹고 난 뒤, 담임목사님이 예비부부 교육을 해주신 이야기를 나눴다. 목사님은 ‘자신이 파트너에게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행동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고 했다. 서진은 ‘스킨십’을 할 때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한결은 ‘상대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줄 때’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낀다고 했다.

  한결은 가족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자주 서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어루만졌다. 서진은 다이어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덩치가 큰 한결을 귀여워하며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있었다. 서진 역시 ‘상대가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줄 때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 두 번째로 순위가 높았다고 했다. 한결이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줄 때마다 서진은 찐으로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K는 아들이 대학생 때 요리학원을 다니며 요리에 입문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결은 MBTI 검사에서 T가 10점 만점이라고 했다. 반면에 서진은 F가 10점 만점이었다. 극단적으로 다른 이 커플은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았다. 아들은 자신의 T 성향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땐 F가 5정도 나타난다고 했다. K는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있을까 싶었다. 아들의 마음 밭 깊고 어두운 곳에 감춰져 있는 감성을 발현시키는 서진의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텐션이 강한 서진은 흥이 올라오면 이야기를 쉬지 않고 풀어놓는 스타일이었다. 그럴 때면 한결이 서진의 어깨에 손을 얹고 텐션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서로 그렇게 하기로 합의한 듯했다. 하지만 은결에겐 그 모습이 영 거슬린 듯했다.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던 은결이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어휴! 저 오빠 왜 저래! 여자친구가 말하고 있는데 왜 자꾸 말려.”

  하지만 서진은 한결이 어깨에 손을 얹어줄 때마다 자신을 진정시켜 주는 남친을 고마워하고 있었다.

  K는 세상일이 참 놀랍고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K에게 딸은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지혜로운 성격을 지닌 존재였다. 그런데 아들에겐 딸 같은 성격을 가진 상대가 맞지 않았다. 딸에게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은 천만다행스럽게도 자신의 부족하고 못난 모습까지 생긴 대로 사랑하고 기뻐해 주는 파트너를 만난 것이었다. K는 신의 은총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 시간 가까이 즐겁고 화목한 대화를 마치고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아들은 식기세척기로 설거지를 한 뒤 잠자리에 들 터였다. K는 요리와 설거지까지 오롯이 담당하는 아들의 모습이 무엇보다 대견하고 듬직해 보였다. 그 진중하고 묵직한 노동이 아들 커플의 사랑을 아름답게 영글어 가게 하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K는 다음 날 책을 읽다가 전날 자신이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주는 내용을 접했다. 인도의 영적 멘토가 쓴 책이었다. 상대의 결점을 고치려 하지 말고, 장점에 초점을 맞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내용이었다. K는 서진에게 해당 페이지를 찍은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내주었다.

  -어제 서진이를 보고 느낀 것과 똑같은 내용을 책에서 읽었네~

  한결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고 사랑해주고 기뻐해 주는 서진이의 모습을 보고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고맙고 감사하구나~^^     

  잠시 뒤 서진으로부터 답신이 왔다.

  -아버님 ㅠㅠ 저도 감사합니다ㅠ❤

  어제 다 같이 밥 먹을 때 푸근하고 있는 그대로 모두한테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서 저도 행복했고, 한결이도 너무 좋았대요~

  저희 지금처럼 즐겁게 잘 지내볼게요❤     

  K는 현명하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서진에게 큰 신뢰가 느껴졌다. 아들 부부의 앞날이 멋지게 펼쳐지리라는 기대로 가슴이 뿌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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