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상견례가 예정돼 있던 날 K는 공원 5바퀴를 달린 뒤 정갈하게 목욕을 했다. 정성껏 얼굴에 스킨과 크림을 바르고 목덜미와 귀밑에 향수도 적절히 뿌렸다.
상견례 장소는 집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의 중식전문점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K 부부는 두 해 전 호주의 딸이 줌으로 원격결혼식을 할 때 처음 상견례를 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부모들끼리의 상견례였다. 어떻게 보면 정식 상견례는 처음 하는 셈이었다.
중식전문점 룸에서 마주 앉은 서진의 부모님 얼굴도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상견례는 처음 해 보는 거라 많이 떨리네요.”
서진 아버지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진 어머니도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많이 긴장된다고 했다. K가 함께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 하는 상견례인데도 첫 번째보다 더 긴장이 되더라구요. 하하.”
K가 아들 커플을 보며 농담을 했다.
“서진이랑 한결이가 잘 이끌어주겠죠, 뭐. 하하하.”
서진과 한결도 첫 경험이긴 마찬가지였던지라 K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K가 서진과의 남달랐던 인연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저는 좀 과한 표현일 수도 있는데 ‘운명’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3년 전에 제가 서진이한테 제 책을 선물해줬는데, 서진이가 ‘저 이 책 알아요’라고 하더라구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책 내용이 좋다’며 선물해 주신 책이라고요.”
서진 어머니는 그때 딸에게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서진이가 한결이보다 저랑 먼저 며느리랑 시아버지로 맺어질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하.”
함께 웃음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서진아, 마지막 내용 기억나지? 한결이가 세 살 때 산후풍 걸린 엄마 배려하느라고 혼자 책 읽다가 잠들었던 내용.”
“네, 기억나요.”
K가 수십 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사돈들에게 말했다.
“아들이 그 책을 중1 겨울방학 때 읽었거든요.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난 한결이가 저한테 와서 왜 자기를 그렇게 내버려 뒀냐면서 울더라구요. 어렸을 적 자기가 너무 불쌍하다면서요, 하하.”
한결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K가 아들에게 물었다.
“한결아, 네가 책 다 읽은 날 아침에 내가 카페 가는데 만원 줬던 것도 기억 안 나니?”
아들은 그것 역시 기억하지 못했다.
“그날 아침에 저한테 만원을 주면서 아빠 글 잘 쓰시라고 하더라구요.”
어린 마음에도 내용이 좋았나보다는 K의 말에 아들은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어느덧 분위기가 많이 화기애애해졌다. 서진의 부모님도 조금씩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긴장한 얼굴로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던 K의 아내도 편하게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K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예비 사돈들에게 말했다.
“서진이 덕분에 저희 부부가 굉장한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됐습니다.”
K의 아내가 기대로 가득한 얼굴로 남편의 말을 거들었다.
“저희가 여자배구 인삼공사 팀 팬인데, 서진이가 다음 주 토요일 경기를 예매해 줬어요, 상대 팀이 김연경이 있는 흥국생명이어서 티켓 예매하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K가 서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서진이가 저희한테 하늘의 별을 따다 주었습니다. 그 경기 티켓 예매가 3분도 안 돼서 끝났다고 하더라구요.”
사랑하는 남자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서진의 열망이 기어이 하늘의 별을 따게 했던 것 같았다.
중식점의 음식들은 맛이 고급스러우면서도 깔끔했다. K의 입맛엔 그래도 탕수육이 가장 맛있었다. 어느 중식집이든 탕수육만은 K에게 실망을 준 적은 없었다.
서진 어머니는 K와 잘 통했고, 서진 아버지는 K의 아내와 잘 통했다. 서진 아버지는 시골로 내려가서 텃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하는 로망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서진 어머니는 도시가 더 좋다며 시골로 내려갈 마음이 없다고 했다. K가 탕수육을 집어먹으며 말했다.
“저도 도시가 좋습니다. 일단 도서관이 집 옆에 있어야 하구요, 하하.”
시골 생활을 하더라도 세컨하우스 개념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것에도 K와 서진 어머니의 생각이 일치했다. “그럼 우리가 먼저 내려가서 텃밭을 가꾸며 자리를 잡고 있을까요?”라는 K 아내의 농담에 서진 아버지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시죠. 제가 머슴 하겠습니다, 하하.”
자신을 서슴없이 낮추는 그의 모습에서 K는 소박함과 진솔한 매력을 느꼈다.
서진 어머니가 평소 K의 생각과 일치되는 말을 꺼냈다.
“저는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K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맞습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잘사는 거죠.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구요.”
양가 부모는 두 젊은이가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아이 낳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려나가 주기를 같은 마음으로 바랐다. 서진과 한결이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에도 함께 동의했다.
K는 한국 사회가 ‘평범’이 너무 어려운 곳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어쩌다가 ‘평범한 결혼’도 하기 힘든 곳이 돼버렸을까. 평범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하는 사회를 젊은이들에게 물려주고 말았다는 사실에 K는 씁쓸함을 느꼈다.
예비 사돈 부부를 만나고 K에게 가장 안심이 되었던 것은 두 분의 ‘평범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평범을 얻기까지 두 분이 얼마나 비범한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왔을지 K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몇 달 전 K는 ‘결혼하고 싶은 이유’에 대한 서진의 생각을 들은 일이 있었다. “저희 부모님이 저를 사랑으로 키워주셨던 것처럼 저도 아이를 그렇게 사랑으로 키우고 싶어서요.”
서진의 평범한 꿈이 K는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서진의 어머니는 몇 해 전 안양에서 광명으로 이사 올 때 서진이가 크게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아빠 일이 어려워져서 어쩌다 광명으로 집을 줄여 이사 오게 됐어요. 서진이가 안양 집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서진이가 저희랑 함께 다니던 교회가 안 맞아서 두레교회에 가게 됐어요. 거기서 신랑감을 만난 거잖아요.”
서진 어머니는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일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K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행복한 부부의 비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두 사람에게 했던 말인데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제2의 결혼 생활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돌봄 노동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지고요. 제가 아들한테 그랬어요. 내가 6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라구요. 그래야 5대 5가 된다구요.”
K의 말에 예비 사부인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상대가 하는 일은 다 알 수가 없으니까요.”
K가 아내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몇 해 전부터 ‘내가 6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랬더니 아내가 저를 더 좋아하더라구요.”
K의 말에 아들이 웃으며 “그건 엄마한테 물어 봐야 되는데?”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K의 아내가 남편을 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더 좋아하네. 더 좋아해.”
그 말에 모두가 크게 웃었다. K는 마지막 남은 탕수육 하나를 집어 먹으며 만족스러운 맛을 느꼈다. 그는 이 탕수육처럼 평범하면서 맛있는 행복이 서진과 한결의 결혼 생활에 늘 함께하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