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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May 14. 2024

15. 해물된장찌개, 무릎 수술한 어머니의 입맛을 돋운

제 부 – K, 셀프 효도가 가능해지다        


                 

  15. 해물된장찌개무릎 수술한 어머니의 입맛을 돋운 집밥   


       

  일 년 전 K의 어머니는 무릎 수술을 받게 되었다. 원래는 K의 방학인 1월에 수술 예약이 돼 있었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11월에 양쪽 무릎 수술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무릎 인공 관절을 교체하는 대수술을 받으신 후 K의 어머니는 아들 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K 부부는 안방 침대를 어머니께 내드리고 매트리스만 깔린 작은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K의 아내는 이틀 전부터 매트리스 덮개 천을 갈고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젓갈류를 사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어머니가 퇴원하던 날 오후에 K는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어머니는 손자(한결)가 도수치료사로 있는 병원에서 내로라하는 무릎 수술의 권위자인 원장에게 수술을 잘 받았고 예후도 좋아 보였다. 한결 말로는 할머니의 근육 힘이 워낙 좋으시고 무릎도 잘 꺾이셔서 상위 5%에 들 정도로 경과가 좋다고 했다.


  대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온 K의 어머니는 안방 침대에서 두어 시간 잠이 들었다. K는 저녁에 갈비집에서 부장교사 회식이 있었지만 회식 장소로 가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기거하는 동안 먹을 찌개류를 매일 전담하기로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혼 즈음 K 부부는 어머니와 두 해 정도 동거한 일이 있었다. 당시 K의 아내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오십 즈음이었던 K의 어머니는 지금의 K 부부보다 젊었고 기운도 팔팔했다. 이십여 년이 지났고 K 아내의 위치도 사뭇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와의 동거가 아내에게 마음 편할 리 없었다.


  K는 어머니가 오신 첫날 저녁을 아내에게 맡기고 부장 회식을 가버리는 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K가 어머니께 자신의 전매특허인 된장찌개를 끓여 드리고 싶었다. 된장찌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그에겐 있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K가 한 요리 중에 된장찌개를 가장 맛있게 먹으며 마음에 들어 하기도 했다.     


  평소엔 해물을 넣지 않고 끓였지만 어머니가 오셨기 때문에 K는 자연드림에 들러 해물모둠을 한 봉지 사 왔다. 자연드림 육수 팩을 커다란 웍에 넣고 끓인 후 해물과 감자, 버섯류, 애호박을 넣고 다시 끓였다. 조개 된장과 미소 된장, 자연드림 된장을 넣은 양배추와 양파, 두부를 넣고 더 푹 끓였다. 마지막에 파를 듬뿍 넣고 요리를 갈무리했다.


  저녁상은 K의 아내가 준비해 놓은 반찬들로 가득했다. 직접 만든 물김치와 깍두기, 깻잎장, 진미채, 콩장, 땅콩장에 사놓은 매실장아찌와 오징어젓 등이 풍성하게 차려졌다. K의 어머니는 된장찌개를 먹으며 연신 맛있다고 감탄을 했다.

  “병원 밥도 맛은 있었는데, 집밥만은 못해. 아들이 끓인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다.”


  K가 끓인―아내에게 배운―된장찌개에는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깊은 맛이 있었다. 푹 끓이지 않은 야채의 식감이 살아있는 신선한 맛도 있었다. K의 아내가 급식실에서 얻어 온 감자가 칼을 튕겨낼 정도로 탱탱했는데 찌개의 맛을 더 고소하게 만들어 주었다.

  K의 아내가 시어머니에게 고마운 말을 건넸다.

  “어머니, 한 달 동안 맘 편히 계시다 가세요. 부담 갖지 마시구요.”

  “감사한 일이 참 많구나. 저녁마다 손자가 도수치료도 해줄 거잖아. 재활병원에 안 가길 잘한 것 같다.”


  K의 아내는 3주 뒤 호주로 딸 부부를 만나러 가기로 돼 있었다. 아내가 그때쯤에는 어머님이 저녁을 준비해 놓으실 만큼 건강해지실 거라고 말했다. K의 어머니는 그런 날이 올까 싶은 표정이었다. 자신 없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K가 말했다.

  “그때도 내가 어머니 집안일 못하시게 할 거야. 사위 왔을 때 아무것도 안 시켰는데, 어머니도 그렇게 모셔야지. 내가 계획해 놓은 요리가 얼마나 많은데!”

  K의 말을 듣고 어머니와 아내가 함께 웃었다.


  K는 요리를 할 줄 알게 되었기에 어머니를 한 달 동안 모시는 일이 훨씬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그동안 갈고 닦은 요리를 어머니께 맛보여 드리겠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생겨나기도 했다. 한 달 동안 K가 어머니의 주부양자가 되고 아내는 보조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K가 준비한 요리 계획은 이러했다.

  첫째 주 : 된장찌개-미역국-해물짬뽕-찜닭

  둘째 주 : 황태국-해물단호박카레-크림스파게티-만두전골

  셋째 주 : 순두부찌개-김치두루치기-감자고추장찌개-오삼불고기

  넷째 주 : 계란탕-대패삼겹살숙주나물볶음-배추국-닭볶음탕     


  반찬류는 가지볶음, 어묵조림, 계란찜, 두부조림, 애호박계란부침, 감자스프, 토마토 스프 등이 가능했다. K는 이만하면 자신이 어머니의 주부양자가 될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다.          



  다음 날은 K의 아내가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K는 된장찌개 남은 것으로 어머니와 저녁을 차려 먹고 난 뒤 설거지까지 해놓았다. 7시 즈음 도착한 K의 아내는 다음날 시어머니가 먹을 시금치된장국을 맛있게 끓여 놓았다.


  그날 밤 K의 어머니는 잠들기 전 며느리에게 다음 날 아침에 먹을 계란찜을 만들어 놔 달라고 부탁했다. K의 아내가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미리 만들어 놓으면 맛이 없어요. 내일 아침에 아범한테 만들라고 할게요.”

  K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놀라며 아들에게 물었다.

  “아범이 계란찜도 할 줄 아냐?”

  “에이, 어머니 그 정도는 충분히 하죠.”

  K는 어머니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듯하여 살짝 기분이 상했다.     


  과도한 소염진통제로 입맛이 없었던 시어머니가 계란찜을 만들어 놔 달라고 했을 때 K의 아내는 살짝 과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몰랐다. ‘애써 시금치된장국을 끓여 놨는데 계란찜도 미리 만들어 놓으시라고?’라는 생각이 들었을 터였다. 그런 생각들이 쌓여 가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었다. 계란찜 정도는 할 줄 아는 아들이 있기에 그런 며느리의 스트레스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게 아니겠냐고 K는 조금 과한 의미를 부여하며 위안을 느꼈다.


  K의 어머니는 수술 후유증이 무릎이 아니라 온통 입으로 온 듯했다. 이가 들뜨고 잇몸이 부어 헐기 직전이 되어 음식 먹는 일이 고역이 되었다. K가 계획한 요리들을 해드릴 수 없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될 것 같았다. K는 아내와의 협업으로 이 난관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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