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병일 Apr 16. 2024

14. 소고기구이, 며느리를 사위처럼 손님으로 맞는다는


  어머니의 생신날이었던 일요일에 K 부부는 아들 부부와 함께 의왕으로 가기로 했다. 서진은 결혼 전 한 번 예비 시할머니를 뵌 적 있었다.

  K 부부는 오후 네 시에 차를 몰고 한결의 아파트로 가서 부부를 픽업해 어머니 댁으로 갔다. 요즈음 K 부부에겐 일요일이 가장 힘든 날이었다. 아침 8시부터 교회 주방에 가서 식당 봉사를 했고, 성가대 연습과 예배 후 다시 성가대 연습, 2시부터 오후 예배 성경공부 진행까지 쉴 틈 없이 봉사를 했다. 이날은 예배를 드린 뒤 바로 집으로 돌아와 낮잠을 좀 자고 나온 것이었다.

  “요즘은 월요일이 제일 힘들어. 일요일에 봉사를 너무 많이 해서.”

  K의 말에 서진이 웃으며 말했다.

  “호호. 아버님, 주일 아침마다 식당에서 봉사하느라 많이 힘드시죠?”

  “그래도 재미있어. 자녀가 교회에서 짝을 만나 결혼하는 일이 요즘 얼마나 힘든 일이니? 로또를 맞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열심히 봉사해야지.”

  K 아내가 남편의 말을 이렇게 받았다.

  “서진아, 네가 로또라는 말이다.”

  “어머니, 호호호…”

  K는 등 뒤로 서진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그려졌다.     


  할머니 댁에서 한결은 능숙하게 소고기를 구웠다. 전날 한결과 서진이 코스트코에서 사온 고기였다. 한결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잘라서 통에 더 담아왔다. 나중에 할머니가 구워 드시기 좋게 준비해 온 것이었다. K의 아내와 어머니, 서진이 식탁에 상을 차렸다. 서진은 주방 일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서툰 손으로도 밥과 반찬들을 식탁으로 부지런히 날랐다. K가 전날 만들어 가져온 미역국도 냄비에 데워져 국그릇에 담겼다.

  잠시 뒤 풍성한 저녁 만찬이 차려졌다. K의 어머니도 맛있는 반찬을 많이 준비해 놓았다. 열무김치와 우엉조림이 너무 맛있어서 서진과 K 아내의 찬탄이 이어졌다. 한결은 그런 서진을 보며 “사회생활 잘한다”고 칭찬하며 웃었다. 서진은 진짜 맛있어서 한 말이라며 한결을 귀엽게 째려보았다. 한결도 자신의 사회생활에 대해 이실직고를 했다.

  “나도 서진이 부모님 댁에 가면 칭찬 잘해드려. 하하.”

  한결의 장모님은 하루에 열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하고 와서도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까지 도맡는 사위가 너무 좋아서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서진은 K 아내가 만들어 온 물김치도 잘 먹으며 맛있다고 감탄을 했다. 한결이 맛있게 구운 소고기도 맛이 일품이었다. 저녁을 한참 먹었을 즈음 K의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만든 미역국도 너무 맛있어.”

  그 말을 듣고 K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이 언제 나오나 했네. 역시 아내밖에 없구나. 하하.”

  K의 말에 서진이 당황하며 “아버님, 미역국 너무 맛있어서 저 다 비웠잖아요”라면서 빈 국그릇을 들어 보였다. K의 어머니도 미역국 다 먹은 것 보라며 뒤늦게 칭찬을 했다.


  한결이 생각났다는 듯이 K를 보며 말했다.

  “아빠, 교회 수련회 때 강의하시나 보던데?”

  “그거? 내가 비폭력대화 강사 알아봐 주기로 했던 건데, 강사비가 100만원이라고 해서 그냥 내가 하기로 한 거야. 한 달 전에 대림중에 가서 교사들 대상으로 비폭력대화 강의한 적 있었거든.”

  서진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아버님, 대림중학교 제가 나온 학교예요!”

  K는 두어 번 서진이 나온 중학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서진이가 대림중 나왔다고 했지.”

  서진은 시아버지가 자신이 한 말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서운해하거나 “제가 전에 말씀드렸는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K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줄 아는 서진의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한결이 “아빠가 하시는 거 보면 이러다 장로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K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야, 그러지 마라. 장로 될까 봐 너무 겁난다. 인생이 참 내 뜻대로 안 돼. 난 장로도 안수집사도 될 마음이 일도 없었는데 말이야. 자식들이 신앙생활을 너무 열심히 하니까 그런 길을 가게 되네.”

  한결은 K의 속도 모르고 아버지가 장로될 것 같다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 서진이 그런 남편을 살짝 말렸다. K는 오전에 교회에서 성가대 집사님들과 비슷한 대화를 나눴었다. K의 푸념 섞인 말을 듣고 난 이 집사님이 말했다.

  “집사님,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르시죠. 우리 자식들도 그래 주면 너무 좋겠어요.”

  딸이 교회 생활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된 이 집사님의 말을 듣고 K는 한결과 은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K의 아내가 아들에게 돼지고기도 좀 구워보라고 했다. K는 한결이 구워온 돼지고기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거의 끝마쳤을 때 K가 일어서며 말했다.

  “자,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정리만 좀 해주세요.”

  K는 주방 개수대로 가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서진이 오기 전에도 어머니 댁에선 늘 한결이 고기를 굽는 등 요리를 했고 K가 설거지를 했다. K는 며칠 전 어머니에게 미리 전화를 해두었다. 손주며느리도 있는데 아들인 시아버지가 설거지하는 걸 보고 어머니가 당황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며느리도 사위처럼 손님처럼 대할 거’라는 K의 말에 어머니도 흔쾌히 동의했었다.


  K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서진은 시어머니를 도와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는 일을 했다.

  “으아! 어머니 냉장고가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넣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K의 어머니 냉장고는 두 개 있던 냉장고에서 한 개로 합친 상태여서 내용물이 복잡하게 들어있었다. K의 아내가 “너는 못하겠다. 내가 할 테니까 한결이랑 쉬고 있어” 하며 며느리를 아들 곁으로 보냈다. K의 아내는 시어머니의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큰 통들을 계속 설거지 거리로 내놨다.


  잠시 뒤 K의 어머니가 와서 아들에게 말했다.

  “아범아, 내가 설거지할게. 냉장고에서 나온 통들이 너무 많다.”

  K는 괜찮다며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그 후에도 커다란 반찬 통들이 몇 개 더 나왔다. K의 아내가 김치 통을 내려놓으며 “설거지 할 게 쉬지 않고 계속 나오지?”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괜찮아. 엄마 할 일 도와드리는 건데, 뭐.”

  K는 아내와 어머니, 아들, 며느리가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들으며 즐겁게 설거지를 했다.     


  K네 가족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뒤 여자배구 정관장과 흥국생명의 플레이오프 2차전을 함께 봤다. K 부부는 정관장 팀의 오랜 팬이었다. 1차전에서 완패당했던 정관장이 1세트를 쉽게 이긴 뒤 2세트도 앞서나갔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경기를 온 가족이 함께 보니 즐거움이 배가 됐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지났다. K의 가족은 정관장이 2세트까지 승리하는 것을 보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K의 어머니는 손주며느리를 안아주었다. 싹싹하고 밝고 살가운 서진이 너무 이쁘다는 듯 꽉 끌어안았다.

  K 부부와 아들 부부는 차를 몰고 서울로 돌아왔다. K네 가족은 며느리를 사위처럼 손님으로 대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가족이 된 것 같았다. K는 그런 가족을 만드는 일을 주도했던 자신에게 살짝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면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전 13화 13. 고구마케이크, 아내를 ‘애기’라고 부르는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