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인간으로서 존엄해지는가

김종삼 「장편2」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by 손병일

장편(掌篇)2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 전(錢)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 전(錢)짜리 두 개를 보였다



매일경제2.jpg 출처 : 매일경제



김종삼의 시 「장편(掌篇)2」에는 읽는 이의 가슴 한구석을 아릿하게 찌르는 슬픔이 있다. 장편(掌篇)은 손바닥만 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시인은 이토록 짧은 시 한 편에 만만치 않은 이야기를 담았다.

「장편2」는 아릿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면 일제 치하의 뼈저리게 가난하던 시절이다. 그만큼 어렵진 않았지만, 부모님이 함바 식당을 했던 어린 시절의 우리 집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 청계천변 십 전(錢)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 거지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 이끌고 와 서 있었다


거지소녀가 거지 부모를 이끌고 간 곳은 일인 분이 십 전(錢)인 가정식 백반집이었거나 국밥집이었을 것이다. 당시 청계천 변엔 움막을 짓고 사는 거지 가족들이 많았다고 한다. ‘십 전 균일상 밥집’은 그들에게 접근이 불허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곳에 거지 가족이 나타났을 때 밥을 먹고 있던 손님들은 심히 불쾌했을 것이다. 불결하고 혐오스러운 하층민이 그들의 눈에 띄었다는 것 자체가 밥맛 떨어지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가장 놀란 건 식당 주인이었다.


주인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 태연하였다


주인은 재수 없으니까 빨리 꺼지라며 그들을 내쫓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소녀는 태연했다. 왜 태연했을까.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 십 전(錢)짜리 두 개를 보였다


거지소녀는 구걸하러 온 게 아니었다. 시인은 소녀가 데리고 온 어버이가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소녀는 십 전짜리 두 개를 내밀고 있다. 지금으로 치면 만 원짜리 두 장을 내밀며 버티고 있는 셈이다. 구걸이 아니라 밥값을 치르고 먹겠다는 것이니 상을 내달라고 정당한 요구를 한 것이다.

식당 주인은 과연 이십 전을 받고 거지 가족에게 밥상을 내주었을까. 그것이 너무도 궁금하다. 야속하게도 시인은 그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다. 거지소녀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가 어버이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무수한 시선들 속에서 식당 주인과 맞서는 아슬아슬한 결기를 보여줄 뿐이다.


때로 가족을 책임져야 할 입장에 처한 어린아이에게서 예기치 못한 당당함 또는 뻔뻔함이 작동될 때가 있다. 함바 식당을 하다가 가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열한 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우리 가족은 공사판 근처에 천막을 치고 식당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수돗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냄새는 점점 심해져서 나중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근처의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토양을 오염시킨 탓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수돗물은 수도관을 통해 들어온 정화수가 아니라 근처의 지하수를 끌어올린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민원을 올렸기 때문인지 얼마 뒤 구청에서 오염되지 않은 수돗물을 제공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수도꼭지는 한 개밖에 없었다. 지하수를 먹던 동네 사람들은 매일 그 물을 받아 가기 위해 줄을 섰다. 물통을 들고 갈 때마다 그곳에는 늘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향신문.jpg 출처 : 경향신문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들고 간 물통은 엄청나게 컸다. 게다가 한 개가 아니라 늘 두세 개였다. 함바 식당에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백여 명의 인부들이 밥을 먹으러 왔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할 음식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려면 말할 것도 없이 물이 많이 필요했다. 내가 물을 받고 있을 때마다 뒤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어댔다.

“혼자서만 그렇게 많은 물을 받아 가면 어떻게 하냐”, “기다리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냐”, “이번엔 한 통만 받아 가라, 양심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어린놈이 어른들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저놈 눈 똑바로 뜨고 노려보는 것 좀 봐라” 그런 말을 매번 들었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굳게 다문 입술로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함께 물 받으러 온 동생들은 동네 사람들 눈치를 보며 이번엔 한 통만 받아 가자고 나를 조르곤 했다. 하지만 나는 입을 더 굳게 다문 채 한 곳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거지소녀만큼 뻔뻔하고 태연했다. 그렇다. 나는 태연할 수 있었다. 내가 이 물통들에 물을 받아 가지 못하면 우리 부모님은 장사를 하지 못한다, 나는 부모님에게 그런 일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당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들처럼 약해지지 않았다. 나는 장남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지소녀가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지를 때도 태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안다. 그것은 십 전짜리 두 개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버이에게 생일상을 사드려야 한다는 당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니면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가족을 책임지는 일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에 바닥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거지소녀는 어버이의 생일날이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 역시 몇 주 뒤 수도가 복구되고 냄새나지 않는 물이 공급되었기에 열한 살짜리가 짊어지기에 무거웠던 짐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L중학교에서 중2 담임을 맡았을 때 자주 결석하던 남학생 S가 있었다. 가정방문을 가보니 아버지는 지방 공사 현장에서 지내고 있었고 누나와 둘이 살고 있었다. 집안은 엉망이었다.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들이 개수대와 싱크대를 덮고 있었고, 청소한 지 오래인 거실 바닥은 끈적끈적했다.

두 번째 가정방문 갔던 날 어렵게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S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S의 어머니는 산후우울증이 발병한 후부터 가족을 돌볼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초등학생인 막내딸과 함께 친정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S는 6학년 때 막내와 함께 살고 싶다며 자신이 동생을 책임지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아침마다 여동생을 깨워 초등학교에 데려다준 뒤 등교하는 생활을 지속했다. 아버지는 그때도 주로 지방에서 기거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S는 동생을 건사하는 삶을 더 이상 버텨낼 수 없게 되었다. 그토록 예뻐했던 여동생은 어머니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 충격으로 S는 2학년이 되어 몇 달 동안 학교를 거의 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자기가 원해서 여동생을 돌본 것이긴 했지만, 어린 자신에게 오래도록 가혹한 짐을 지게 했던 부모에게 자기를 좀 돌아봐달라는 호소였을 것이다.

S는 학년말에 출석일수의 2/3를 채우지 못해 유급될 위기에 처했다. S의 집에 무수히 가정방문을 가고 “담임 얼굴만 보고 가라”는 회유도 해봤으나 그리되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학년말에 나는 S가 오지 않은 날 며칠을 출석으로 처리해주고 진급을 시켜 주었다. 다행히 중3 때 S는 착실히 학교에 다니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었다.



오마이스타.jpg 출처 : 오마이스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는 고아가 된 배다른 여동생(스즈)을 세심히 보살펴 주는 언니들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은 바닷마을에서 살고 있는 세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인데, 이들은 스즈의 이복 언니들이다. 스즈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으로, 사치와 동생들에겐 가정을 파괴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부고를 받은 세 자매는 기차를 타고 가서 깊은 산골 같은 곳의 장례식장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역으로 마중 나온 스즈를 처음 보게 된다. 스즈는 새어머니에게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속이 깊은 아이다. 반면에 새어머니는 장례식에서 손님들에게 하는 인사말을 스즈에게 맡기려 할 정도로 나약한 어른이다.

큰언니 사치는 아버지가 투병하며 죽기 직전까지 새어머니가 간병했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챈다. 간호사인 사치의 눈에 ‘새어머니가 병든 아버지에게 잠시 들렀다 갔을 뿐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장례를 마치고 세 자매가 기차역으로 향할 때 스즈가 뛰어와 아버지의 유품을 전해준다. 그것은 세 자매가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세 자매는 어린 시절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언니들은 스즈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간호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한다. 자신의 노고를 새어머니가 가로챘음에도 아무 말 못 했던 스즈는 자신의 고생을 알아봐 준 언니들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스즈는 친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셨기에 고아와 다름없는 신세였다. 기차가 도착하고 플랫폼에서 막 출발하려던 순간 사치가 스즈에게 말한다.

“스즈, 우리 집에서 같이 살래?”

예상치 못했던 말에 당황한 스즈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요시노와 치카는 큰언니의 결정에 환호의 웃음을 터트린다. 혼란스러워하는 스즈에게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돼. 마음이 결정되면 알려줘”라는 사치의 말이 들린 뒤 기차 문이 닫힌다. 열차가 떠나기 직전 스즈는 “언니들과 같이 살게요”라고 대답한다. 떠나가는 기차를 쫓아가며 손을 흔들면서 스즈는 감격의 미소를 짓는다. 스즈는 그렇게 구원받는다.

경남연합일보.jpg 출처 : 경남연합일보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 십 전(錢)짜리 두 개를 보였다


식당 주인은 어린 거지소녀에게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장님 거지 어른을 내쫓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구리 료헤이의 소설 『우동 한 그릇』에는 「장편2」와 아주 대조적인 식당 주인이 나온다. 12월의 마지막 날 문 닫을 시간에 허름한 옷차림의 세 모자가 우동집 북해정으로 들어온다. 어머니는 어린아이들 앞에서 쥐어짜 낸 목소리로 1인분만 주문해도 되냐고 묻는다.


북해정 주인 부부는 마음씨가 좋은 사람들이다. 여느 손님들과 다름없이 친절하게 가난한 가족을 대한다. 인정 많은 여자는 남편에게 3인분을 주자고 말한다. 하지만 남편은 이 상황에서 삼인분을 주는 것은 어머니를 모욕하는 것임을 안다. 1인분 주문에 3인분을 받아 든 세 모자가 거치 취급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북해정 남편은 1인분 반을 그릇에 넣어 준다. 어머니와 아들들이 자존감을 지키며 조금 더 먹을 수 있게 한 것이었다. 화기애애하고 맛있게 우동을 먹고 난 세 모자는 우동집을 나선다. 그때 주인 부부는 깍듯하게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한다.


북해정 주인 부부는 세 모자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선에서 호의와 친절을 베풀었다. 1인분의 주문을 기꺼이 허락한 것, 딱 반만 더 얹어준 것, 돌아가는 가족에게 정성을 가득 담아 인사를 건넨 것은 어머니보다는 아이들을 보고 그렇게 한 것일 것이다. 물론 「장편2」의 식당 주인과 입장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식당에 허름한 세 모자가 들어오는 것과 장님 거지 가족이 들어오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냄새 나는 장님 거지와 거지소녀를 다른 손님들 옆에 들이는 일은 과연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녀에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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