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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May 04. 2024

아빠는 hero

2020.05.09(라온이 만 2세)

어버이날 시댁에 갔다. 시댁은 남편처럼 정 많고 늘 바쁘다. 친정 가족 문화와 다르지만 가족적이고 볶다볶닥한 느낌. 그래서인지 라온이도 시댁에 가면 목소리도 커지고 한껏 신이나 보인다.


가족 저녁 식사 중에 라온이 알통 얘기가 나왔다. 아빠 옆에서 라온이아 알통자랑을 했다.

“ 라온이는 알통이 많아서 힘이째! 여기 봐봐 여기도 딱딱해! 아빠는, 라온이 아빠는 근육이 제일 많아서 힘이째!”

장난기 많은 삼촌은 라온이를 도발했다.

“아닌데 삼촌이 더 많은데~ 라온이 이리 와봐 근육 만져보게. 히히 말랑말랑하네~”

삼촌은 정말 팔뚝이 허벅지 만한 근육맨이다. 라온이는 삼촌한테 가서 근육을 보여주고 삼촌이 만지니 간지러운지 깔깔 웃고 할아버지에게로 갔다.

이번엔 시아버님께서,

“할아버지가 아빠보다 근육 많은데~!”

시아버님도 배에 살이라곤 찾을 수 없는, 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맨이시다.


그런데, 같이 웃던 라온이가 갑자기 아빠를 부여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라온이가 잘 놀다가 갑자기 서럽게 울어 놀랐다.

울면서 하는 말,

“ 아니야 라온이 아빠는 힘이 째 라온이 아빠가 제일 알통이 많아~ 엉엉엉“

어린 마음에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힘이 세고 멋있는 줄 아는구나. 순수하고 예쁘다. 가족들은 “그래 아빠가 젤 힘이 쎄 라온이가 효자구나” 하며 라온이를 위로했다. 라온이가 진정이 되고, 그 이후론 아무도 라온이 앞에서 근육자랑을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나도 엄마아빠가 참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자랐다. 엄마는 손맛 좋은 요리사 아빠는 뭐든지 고치는 척척박사라고 알고 지낸 세월이 길다. 라온이는 크면서 아빠가 삼촌이나 할아버지보다는 근육맨이 아니란 걸 알게 되겠지만 동심을 깨트릴 수는 없으니 남편에게 근육을 더 키워보라고 했다. 아빠를 그렇게 최고라고 생각해 줘서, 그렇게 오열하며 아빠가 최고라고 말해줘서 라온이에게 고맙다. 나중에 부자 사이가 안 좋아질 때 얘기해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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