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뒤의 진실
“오데미안 얘기 들었니?”
“아니, 무슨 일 있어?”
“자살했대.”
그 말을 듣는 순간 박다이달로스는 심장이 멈는 것 같았다. 비보는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그녀의 고단한 삶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운동권 친구들과 뒤늦게 어울리다 알게 된 오데미안. 그녀는 눈에 띄게 당당했고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거침없었다. 소극적이고 겁이 많아 늘 마음의 벽 뒤에 숨어 있던 박다이달로스는, 그런 오데미안에게 매료되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벽을 밀고 들어왔다. 그녀의 말은 때로 가슴을 후벼 팠지만, 이상하게도 박다이달로스는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숭배하게 되었다. 그녀는 박다이달로스에게 세상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처럼 보였다.
오데미안은 세상의 시선이나 기대 따위는 개의치 않는, 경계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자유는 때로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만원 버스 뒷자리에서 술에 취한 채 세상을 비웃는 듯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박다이달로스에게 묘한 감탄과 동시에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감히 뒤를 돌아보지 못했지만, 그녀만은 자기 자신과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빛에 이끌려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공허한 패배자의 얼굴로 돌아서야 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마음속 공백을 남겨 주었지만, 자신은 언제나 단단한 주체였다. 답답할 정도로 순응하며 살았던 박다이달로스는 그 모습에 열광했다. 오데미안은 그녀에게 감히 넘볼 수 없는 꿈이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금기였다.
그녀는 여성만의 연구회를 조직하여 단순히 ‘여성학’을 넘어선 사회 변혁적인 모임을 주도했다. 백골단이 여대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터졌을 때, 분노한 학생들과 함께 자발적 자경단을 꾸리고 '여학생부'가 출범했을 때도 그녀는 늘 함께 있었다. 그런 싸움 끝에 그녀는 자기만의 세계를 이루었다. 캠퍼스 밖 그녀의 집안에서도 싸움은 계속되었다.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사사건건 반발했고, 결국 격렬히 다투고 집에서 나와 독립했다. 오데미안의 자유는 이렇게 얻은, 치열한 싸움의 산물이었다.
어느 여름날 도서관의 어두운 계단에 앉아 함께 담배를 피우며 박다이달로스가 물었다. 늘 용기 내지 못하는 자신이 괴로워서였다.
“너는 두렵지 않아?”
오데미안은 창밖의 어둠을 보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내가 선택한 거잖아.”
오데미안의 자유는 스스로 쟁취한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밤, 박다이달로스는 그 자유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오데미안은 씁쓸하게 말했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있었어. 집이 가난해서 야간 고등학교에 다녔지. 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취직을 시켜줬어. 대기업 부장이셨거든. 근데 얼마 후 그 애가 울면서 찾아왔어. 아버지가 덮쳤다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때 죽으려고 수면제를 먹었어. 실패했지만.”
그 말이 그녀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열쇠처럼 박다이달로스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데미안은 외부의 탄압이 닥치기 전부터도 이미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쟁취해야만 했다. 그녀의 거침없는 삶은 부서지지 않기 위한 저항이자 생존의 무기였다.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토록 자유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치열했던 생존의 싸움이 끝났다는 비보가 박다이달로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토록 강했던 성채가 무너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오데미안이 쟁취했던 '자유' 뒤에 숨겨진,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고독과 고통의 비밀을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그녀의 자유는 어둠과 고통을 딛고 피어난 작은 꽃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