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지워진 사랑
대학교 1학년 어느 금요일이었다. 소리도서관 앞 벤치에서 박다이달로스는 남자 1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그와 웃고 떠들었지만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따라 유난히 그와 헤어지는 것이 힘들었다.
남자 1은 박다이달로스의 단짝 친구였다. 술도 함께 배우고, 취한 날엔 토하는 법까지 알려주던 친구였다. 그녀는 그에게 조금씩 마음이 가고 있었기에 주말 동안 이틀이나 못 본다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허전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고백할 수 없어서 그저 아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가볍게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무정한 계절의 끝자락에서 그녀에게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문을 몰랐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어떤 남자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두 사람은 인사동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가 그녀를 불렀다.
"사모님!"
그 짧은 말 속에서 장난인지 낯익은 소문을 알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했다.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도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20여 년 뒤 동창회에서 둘은 다시 만났다. 남자 1이 박다이달로스에게 물었다.
"나랑 같이 킬링 타임할래?"
그녀가 쏘아붙였다.
"너 진캔디 좋아했잖아."
박다이달로스는 젊은 시절 자신이 얼마나 방황했는지 떠올렸다.
자기연민에 빠져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허둥대던 시기였다.
그녀는 절망에 빠져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그를 멀리했고, 그는 어느새 진캔디 곁을 맴돌며 그녀를 돌보고 있었다.
박다이달로스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 피어났던 감정은 이미 흩어지고, 그녀는 이미 손쓸 수 없는 내상을 입고 있었다.
그 후로 박다이달로스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사람들한테 그가 첫사랑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별뜻 없는 얘기였지만 그렇게라도 마음 어딘가를 채우고 싶었던 걸까.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랑은 애초부터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때의 기억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 시절의 설렘이 상처투성이였던 날들을 묵묵히 떠받쳐 주었다.
돌이켜보면 대학교 1학년 그 짧은 한 학기 동안 느꼈던 감정이 왜 아직까지도 이렇게 생생한지 모르겠다.
아마 그건 그녀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온전히 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그 모든 날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환한 기억으로 마음 깊이 간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