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비 포옹 06화

사랑은 권력이다

프리섹스주의자의 감정 탈락기

by 몽돌이

“지난번에 남자 78이 풀밭에 누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여자친구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모습을 봤어.”

오데미안이 툭 내뱉었다.

박다이달로스는 가슴이 철렁했다. 단지 섹스를 위한 관계라 믿었던 그 남자를, 오데미안이 그런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게 뜻밖이었다. 몸은 자신의 것을 빌려 쓰면서도 마음은 다른 여자에게 있다는 걸 목도했을 때 오데미안의 반응이라니.

자칭 프리섹스주의자였던 그녀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시종일관 자유를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자유의 끝에서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흔들리고 있었다.

우연히 이 땅에 내던져진 불안한 존재들에게 사랑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오데미안은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랑은 결국 자신의 불안을 잠시 덮어두기 위해 만든 ‘내 반쪽’의 신화일 뿐이었다.

박다이달로스는 오데미안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설마 아닐 거야.’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늘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려 했지만 사랑 앞에서는 그녀도 예외였다.

어쩌면 이제야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 앞에서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대상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지 싶다.

하지만 모든 걸 알고도 여전히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다.

육체만의 관계라 생각했는데 막상 마음이 버려졌다는 걸 깨닫자 그녀는 스스로 놀랐다.

사랑 따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녀는 여전히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박다이달로스는 그 변화의 기운을 곁에서 조용히 느꼈다.

오데미안이 고개를 돌려 박다이달로스를 쳐다보았다.

"‘사랑 박사’ 한번 만나러 갈까?"

남자 2에게 실연당해 축 처져 있던 박다이달로스에게 오데미안이 말했다.

오랜만에 육교집에 갔다. ‘사랑 박사’는 이미 와 있었다.

"남자가 떠날 때는 편히 보내야 해요. 그래야 다시 돌아옵니다."

그 말에 박다이달로스는 피식 웃었다.

‘사랑 박사’의 얼굴엔 오래된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과연 이 여자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박다이달로스는 고개를 저으며 술잔을 들었다.

사랑은 언제나 여자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주는 쪽은 권력을 쥐고, 받는 쪽은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틀을 깨려는 여자는 곧바로 낙인이 찍히고 사랑받을 권리까지 잃는다.

그녀는 사랑을 나누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림자와 속삭였을 뿐이었다.

그 관계 속에서 권력이 사랑의 모양을 얼마나 바꿔놓는지를 보았다.

사랑은 권력이다.

그 무게를 몸으로, 눈빛으로, 그리고 상처로 배웠다.

그날 이후 그녀의 웃음은 조금 달라졌다. 자유를 말하던 소리도 어딘가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소리였다.


keyword
이전 05화'번호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