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의 진실
낡은 아파트 거실에 앉아 리모컨을 돌리던 박다이달로스는 한 채널에 눈길이 멈췄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은 피해자이고, 잘못은 가해자에게 있습니다.”
TV 프로그램 속의 성교육 전문가가 따뜻한 얼굴로 말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옆집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보통 성폭력 피해자들은 성에 대해 공포와 혐오를 느끼거나 차마 말을 못 하고 마음의 병을 키운다. 그러나 그녀는 성을 당당히 마주했고, 마침내 성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렇듯 그녀가 당당히 설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존재가 컸다.
어머니는 어린 딸을 안아주며 알려주었다.
“잘못한 건 그 오빠야. 너 잘못 없어.”
그리고 가해자인 고등학생을 데려와 딸 앞에서 사과를 받아내 주었다.
당시 대부분의 부모들이 ‘창피하다’며 사건을 감추려고만 급급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때 나에게도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줬더라면……!”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박다이달로스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는 대학 1학년이던 어떤 날로 돌아갔다.
그녀는 저항했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잘못이라면 너무 어리고 순진했던 것뿐이었다.
세상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그날 이후 잘못은 늘 자기 탓이 되었다.
“여자가 순결을 잃는 건, 목숨을 잃는 거랑 같다.”
어릴 적 어머니한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 말은 평생을 따라다녔다.
쉰이 넘은 뒤에야 박다이달로스는 어머니에게 따져 물었다.
“왜 그런 말을 해서 내 인생을 망쳤어!”
“엄마도 너희 외할머니한테 그 말을 들으며 자랐으니까.”
그제야 어머니도 피해자라는 걸 깨달았다.
여자의 가치가 순결로만 정의되던 세상, 그 거짓 앞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고개를 숙였다.
화면 속 여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누구나 그런 일을 당하면 자신을 탓하게 되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결코 당신의 존엄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볼을 타고 무언가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내 잘못이 아니었어. 그걸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 뿐이야.”
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죄책감을 내려놓았다.
상처의 흔적은 남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나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그녀를 규정하지 못한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