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비 포옹 10화

나비 포옹

새로운 시작

by 몽돌이

아이가 막 돌을 지났을 때였다.

처음으로 남자 96이 누나에게도 손을 댔다는 사실을 알았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누나한테도 그런 짓을 했나요? 왜요, 도대체 왜요?”

시어머니가 멋쩍게 대답했다.

“바른말을 하니까 그렇지…….”

그 한마디에 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그는 어머니에게도 손을 댄 적이 있었다. 나를 때리려던 그를 시어머니가 말리자 그는 거칠게 그녀의 가슴을 밀쳤고, 다음 날 아침에는 시퍼런 멍이 남았다.

그건 '패륜'이었다. 그때 만약 그에게 '패륜아'라는 이름을 붙일 정신이 있었다면 그대로 뛰쳐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너무 어렸다. 어린 아이를 두고 나올 수도 없었고 데리고 나올 자신도 없었다.

처음 그에게 폭행을 당한 건 연애할 때였다. 선배의 집을 방문했던 그날, 한낮인데도 그는 태연히 술을 달라고 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쩔쩔매었고, 그 불편한 기색이 그에게는 못마땅했던 듯하다. 집을 나서자마자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왔다. 너무 아파 창피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 후 멍이 가실 때까지 새벽이면 그의 집에 갔다가 어두워지면 집에 돌아왔다. 증오심은 잊혀지고, 관계는 계속되었다. 돌아보면 그때 그를 끊어내지 못한 나 자신이 안타깝다. 그때의 나는 상처 속에서도 사랑을 갈망했다. 하지만 사랑은 희생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나를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시작이었다.


결혼 후에도 폭력은 계속되었다. 처음엔 ‘이유’라도 있었다. 시어머니가 출타하신 밤 오랜만에 둘만 남아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때 그의 선배가 한밤중에 찾아왔고, 내가 부루퉁해 있었다는 이유로 주먹이 날아왔다.

그러나 곧 이유도 필요 없어졌다. 한참 자고 있는 밤중에도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왔다. 이후 그가 술에 취해 완전히 잠들기 전까지 나는 단 한순간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몸은 늘 지쳤고, 마음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너무 피곤한 날이면 아기를 안고 장롱 속에서 잠을 청했다. 너무 추울 땐 전기장판을 가져가기도 했다. 어둡고 좁은 장롱 속에서 나는 아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는 엄마다’라는 생각이 나를 깨웠다.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자주 맞았고, 아들만큼은 때리지 않겠노라 맹세했고 실제로도 아이는 때리지 않았다. 그 말은 내 마음 한켠에 희미한 온기로 남았다. 나는 그 온기를 붙들며 그의 상처를 연민의 핑계로 삼았다.

하지만 폭력은 외면한다고, 용서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의 동생은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였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삶의 방식은 정반대였다. 폭력은 유전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어느 날 그의 지인 여러 명이 놀러 왔다. 누군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맞으세요?”

나는 작지만 분명하게 대답했다.

“네.”

그날 이후 그는 잠시 조용했다. 그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숨을 돌릴 수 있었고, 마음속 목소리를 들을 여유가 생겼다.


법의 힘으로 그를 집 밖으로 내보낸 뒤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너를 데리고 나올 용기도 없었고, 너 혼자 두고 나올 수도 없었어.”

그 말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때의 나는 좋은 엄마도, 완전한 인간도 아니었다.

다만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다.


지금 나는 그날의 나를 나비처럼 안아주고 싶다.

끊어내지 못했다고, 더 일찍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자책했지만 나는 견뎌냈고 아이를 지켰다.

그리고 나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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