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비 포옹 09화

거기 남자 많대

다시, 대학생

by 몽돌이

뒤늦게 대학에 다시 들어간 건 순전히 우스운 이유 때문이었다.

“거기 가면 남자 많대!”

박다이달로스는 누가 그런 헛소문을 말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오늘의 그녀는 없었을 것이다.

사이버대학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소문과 달리 정작 마음에 드는 남자는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내 인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니터 너머로 들려오는 교수님들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내 마음을 흔들었다.

강의가 끝나도 한동안 그들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첫 번째로 만난 교수님은 부드럽지만 강인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마음이 끌렸다.

그는 언제나 한발 앞서 생각했고, 말에는 따뜻함과 깊이가 배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업이 시작될 때마다 가슴이 괜히 뛰곤 했다.

그는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 오래 잊고 지냈던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이 다시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만난 교수님은 스승이자 동지 같았다. 서로 마음이 통했다.

그는 누구보다 정열적이었고, 질문 하나하나에 끝까지 답해주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인간의 존엄과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던 날들은 그녀에게 새로운 의욕을 불어넣었다.

아마도 그건 처음으로 자신이 존중받고,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의 강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질문의 방향도 달라졌다. 요즘 그녀가 던진 질문은 ‘킹콩과 흑인’에 관한 것이었다.

“백인들은 흑인을 킹콩, 그러니까 고릴라로 비하시킨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는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예로 들며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이 글에서 백인 주인에게 온갖 학대를 받다가 죽은 외눈박이 검은 고양이와 함께, 마지막에 주인의 살인 행각을 발견하게 한 검은 고양이도 흑인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단순한 문학적 장치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작품이 담고 있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살피는 눈이 되었다.

백인 주인은 마치 노예주처럼 순하고 죄 없는 깜둥이 흑인을 린치하고, 목매달고, 태워 죽인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잔혹한 본성이 문학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남아 그녀를 들끓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그렇게 그녀는 문학이라는 창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독후감 정도였지만 점차 평소 말하고 싶었던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글에는 늘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능욕당하고 학대당했다.

바라보면 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녀가 결국 펜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함께 울었다.

그녀는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내 안의 상처가 비로소 제자리로 놓이는 듯했다.

이제 나는 박다이달로스라는 껍데기를 벗고 온전히 내 글을 쓸 것이다.

처음 문학의 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노벨상이 아닌 퓰리처상을 받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당시 노벨상은 백인 남성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겼지만 퓰리처상은 비판적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생각이었다.

사실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결국 부와 명예를 얻고 싶은 마음이었다. 세상과 소통하거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그 다음이었다.

그러나 내 꿈엔 허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참 뒤에야 나는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글을 쓰고 싶었던 건 평생 나를 가둬왔던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이자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더 이상 그 고통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가야만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내 글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어둠에서 벗어나 힘을 얻기를 바랐다. 결국 내가 꿈꾸었던 건 살아남은 자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일이었다.

나는 글로 되살아나고 싶었다.

살아남은 시간을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데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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