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방영된 '미스터 션샤인'은 엄마의 최애 드라마란다.
1871년 신미양요 이후 시기를 배경으로, 한일합방을 앞둔 어지러운 조선에서 의병 활동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너도 엄마가 보던 거 기억나지?
만약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빛도 없고 영광도 없는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킬 수 있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단다.
나라는 백성을 보호해 줄 힘이 없는 상황이니, 온전히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동했고,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했어.
드라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중에 '구동매'는 소나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백정의 아들이었지. 일본으로 건너가서 칼을 다루는 낭인들을 따라다녔고, 뛰어난 칼 솜씨로 인정을 받아 조직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단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구동매는 온갖 피 냄새나는 일들을 도맡게 되었어. 거친 수염과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긴 칼을 찬 채 꿇려 앉은 의병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지.
가진 것이라고는 목숨밖에 없는 주제에,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하는 지게꾼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거야.
너희들 생각은 어때?
작년 네가 중학교 2학년일 때 '운수 좋은 날'을 읽고, 주인공 김첨지라면 어떻게 했을지 적어보라는 국어 문제집에 '힘들게 인력거 끄는 일을 하고 있는데, 부인이 아프다고 누워만 있으면 꼴 보기 싫을 것 같다.'라고 써서 엄마가 한참 웃었지. 상상도 못 했던 기발한 답변이었거든. 그런데 한참을 웃고 나니까 좀 걱정되더라.
'이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야.
중학생인 너에게 본격적으로 국영수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국영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있구나 싶었어.
사랑, 가족애, 헌신, 배려 같은 것들 말이야.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고,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 그런 사람들의 선택이 때론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고,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가 편히 숨 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바로 그런, 바보 같아 보이지만 숭고한 선택들이 모여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작년 12월 이후,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불법 계엄의 책임을 묻고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한국의 1월과 2월은 얼마나 춥니? 엄마가 아스팔트 위에서 몇 시간씩 앉아 있어 보니, 롱패딩을 입고 있어도 한기와 바람이 뚫고 들어오더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꽁꽁 언 발이 너무 힘들었어.
물론 다 같이 추운데 나와 있으니 동료의식 같은 게 생겨서, 처음 본 사람끼리도 핫팩을 주고받거나 간식을 나누며 조금 더 버틸 수 있었지. 물리적 한계나 시간상의 어려움 때문에 광장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함께했단다.
선결제 문화에 대해 들어봤지? 어떤 사람이 미리 계산한 커피나 음식을 나중에 필요한 누군가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거야.
광장 주변의 많은 푸드 트럭이 그 방법을 활용해 따뜻한 차와 간식을 준비해 두었고,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응원 덕분에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단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지도 몰라.
지금의 이 혼란한 시기를 겪어보니,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더라. 엄마와 아빠가 너희를 지켜내고 싶은 마음, 100여 년 전 나라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의병들의 마음, 그리고 지금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고 2025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고 함께 싸우고 있어.
혹시 너도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을까?
엄마의 대답은 이거야.
"광장에 앉아 있다고 돈이 생기지는 않지."
"하지만 이 어려운 시절을 지나 너희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남기고 싶어서, 오늘도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거란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3980935
https://www.youtube.com/watch?v=2_RrzE9Ccu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