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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효도에 드는 비용

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by 방구석 관찰자

‘효’를 실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가는 곳에 마음 간다. ’는 속어처럼 나의 정성과 사랑을 표현하려면 돈이 확실한 수단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돈이 많은 것은 아니어서, 부모를 부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부모의 부양도 소홀히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은 과연 얼마일까? 부모의 부양을 위한 돈에는 거미줄처럼 복잡한 역학 관계가 있다.

일단, 부모를 모시는 데 필요한 항목을 선별해 보자. 가장 큰 항목으로는 병원비와 요양시설비가 있겠다. 그리고 이 두 가지에 해당하는 하위항목의 금액들이 있다.

병원비

예측 불가-질병에 따라, 국가 지원에 따라, 가입 보험의 보장 내용에 따라 각각 다름

간병인 비용

하루 일당 보통 14~15만 원, 중환자 혹은 키가 큰 남성환자의 경우 20만 원도 구하기 어려울 수 있음, 간병인 식사비용 별도

간병 물품

사람마다 다름

요양원

장기요양등급별, 본인부담률(20%, 9%, 6%)에 따라 다름. 장기요양 1 등급자/본인부담률 20% 기준 월 50만 원 이상

요양병원

건강보험공단에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에 책정된 본인 부담금에 따라 달라짐. 진료비, 간병비, 상급병실 등의 비급여 항목에 따라 금액의 차이가 발생. 일반적으로, 진료비의 급여 20% 본인 부담, 식대비의 50% 본인 부담. 월 100만 원 이상

데이케어센터 – 본인 부담금에 따라 다름, 월 15만 원 이상

집에서 모실 경우-기본 생활비와 간병인 비용

지인 E의 경우를 보면, 아버지가 중증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형병원에 입원하셨다. 급성기가 지나면 대충 한 달이 최대 입원 기간이고, 한 달이 지나면 급성 신규 환자에 밀려 하급 병원으로 퇴원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는 절대 혼자 둘 수 없는 상태이고, 재활과 간병이 동시에 필요하므로 중형병원, 소형병원, 요양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병원비와 간병비는 정비례하면서 증가하고, 발병 1년이 지난 지금, 입원실 비용(1일 약 25,000원), 치료 비용(1일 약 80,000원) , 간병비(약 150,000원) 합쳐서, 단순 계산만 1억 원이 넘는다. 물론, 환자가 가입한 보험이나 국가의 지원에 따라 실제 지출 비용은 제각각 다를 것이다.

E는 형제가 한 명이다. 1남 1녀인데,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에도 일찌감치 계 형식으로 비상금을 모아 왔다. 한 달에 10만 원씩, 2명이 5년을 모았으나, 천만 원이라는 큰 금액도 불시에 아버지를 찾아온 질병을 감당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E는 맞벌이로서 대출을 포함해 어떻게든 병원비의 반을 마련할 수 있었으나, 외벌이인 남동생은 역부족이었다. 병원비는 남동생 부부의 불화를 불렀고, E가 독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E는 자신이 불효녀처럼 여겨졌지만, 노후 준비가 전혀 되지 않고 보험 한 개 들어두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 F의 어머니는 어머니 소유의 부동산과 현금 자산이 상당히 많았다. 노후 준비가 완벽한 경우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F 역시 그런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었고, 다른 두 남자 형제 역시 자신들의 가정을 꾸리면 그만이기에 부모의 병원비 부담에서 한시름 놓았다. F의 어머니는 큰 병 없이 단순한 노화로 활동이 편하지 않은 정도였고, 딸인 F와 합가 하길 원했다. F는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며, 불어난 생활비에도 내색하지 않고 어머니의 부양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나중에 어머니가 대부분의 자산을 F를 제외한 장남과 남동생에게 몰래 증여한 사실을 알고, 큰 배신감에 휩싸였다. 자산은 사랑하는 아들들에게만 증여하고, 효도와 부양은 딸에게 받고자 한 것이다. F는 부양하는 자식에게 자산이 증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자 형제들에게 어머니를 모셔가라 했지만, F의 생각에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 F는 가족과의 손절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G의 경우는 부모님의 효도 경쟁으로 정신이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부모님은 부동산 자산만 보유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만나기만 하면 자신들을 잘 부양하면 부동산을 증여하겠다는 말로 형제들을 경쟁시켰고, G도 부모님이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나 싶은 마음에, 부동산의 증여를 기대하는 마음보다는 그저 효도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대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60세 환갑 무렵부터 형제들에게 불을 붙인 효도 경쟁은 90세가 넘어가는 장수를 누리게 되면서 자식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말로만 부동산의 증여를 약속하며 자녀들을 주변에 묶어두려는 부모님의 전략은 자식들의 마음을 떠나가게 했다. 지금은 자신들과 합가 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하지만, 자식 중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에 대한 부양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뤄질 수 있다. 평소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붕어빵 한 봉지에도 효심이 담겨 있고, 통증이 있는 신체 부위를 오랜 시간 꾹꾹 안마하는 것도 부모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노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노력보다 오히려 자본의 힘이 부모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부모님이 아프면 척척 내놓을 수 있는 돈, 내 일상은 일상대로 유지하며 부모님을 돌볼 간병 인력에 대한 대가를 척척 내놓을 수 있는 돈, 부모님 콧바람 쐬게 해 드리기 위한 여행도 척척 계획할 수 있는 돈, 과연 이만한 돈을 쉽게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중년의 시기에 가장 많은 소득을 얻는다. 직장에서는 지위가 올라가고, 손에 익힌 기술은 전문성을 가진다. 그러나 동시에, 자녀에게 들어가는 교육비, 다른 말로 자녀를 독립된 성인으로 사회에 진출시키는 비용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가 된다. 많이 벌어, 많이 쓰게 되는 시기이다. 자녀를 성공적으로 사회에 진입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때, 우리의 부모님들은 한 분, 두 분, 병원에 신세를 지는 시기가 된다. 우리는 부모의 간병비로 얼마까지 쓸 수 있을까? 비상금으로 남겨놓은 얼마간의 현금을 일단 쓰고 봐야 할까? 가용 현금성 자산을 다 소진하면 대출까지 알아봐야 할까?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주거지를 담보로 한 대출까지 해야 하나? 우리의 효심은 과연 돈으로 얼마까지 증명할 수 있을까?

이쪽 벽돌 빼서 다른 쪽에 괴고, 저쪽 벽돌 빼서 이쪽에 괴는, 테트리스 같은 삶이 시작되며, 한정된 벽돌이 바닥나면 어떻게 될지 우리는 감히 예측하기를 피한다. 그 끝을 알아봐야 지금같이 절망적인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간병을 위해, 우리는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의 도움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부모와 자녀에게 어떻게 자원을 배분할지 결정해야 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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