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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 부모의 노화

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by 방구석 관찰자

성정이 외골수 같은 데가 있어, 사회적인 유대가 약한 내 어머니는 주로 나에게 많은 걸 의존했는데, 나와 내 가족을 필두로, 다른 형제들에 대한 걱정, 미래의 경제적인 여유에 대한 걱정, 하루 종일 TV에서 떠드는 사회 이슈에 대한 걱정 등등을 내게 쏟아부었고, 어떨 때는 걱정할 게 없어도 걱정거리를 찾아서 걱정하는 모습이 이미 생활 습관 속에 걱정이란 항목이 추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것이 두려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격이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을 때마다 심호흡 한번 하고 휴대폰을 귀에서 약간 멀리 대며 그만큼의 심리적 거리를 두고 싶은 내 마음을 달랜다.


노화로 인한 불안과 외로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인 잔소리와 걱정들은 어떤 형태로든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마련인데, 그것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매우 선택적임을 알 수 있다. 내 주장이 맞다 공감하는 사람, 바로 당신이 선택받은 자다. 내 어머니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나인데, 다른 형제들을 보면 어머니로선 그런 선택이 당연하다. 언니는 K-장녀로서 가정의 많은 부분에 돌아가신 아빠의 역할을 대신했다. 게다가 어머니가 어설픈 말이라도 한마디 건넸다가는 날카로운 대꾸에 오히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상황이 생긴다. 남동생은 딸 둘을 낳고 귀하게 얻은 아들로서 말 그대로 귀하게 자랐고 어머니와 사이도 좋은 편이지만, 어머니의 이야기 상대로서 노인의 들쑥날쑥한 감정의 토로를 언제까지나 들어줄 참을성 많은 아들은 세상에 많지 않다.


언니에 대한 약간의 어려움이 섞인 아쉬움, 동생에 대한 사랑과 걱정은 나를 향했고, 입이 비교적 무겁고 귀는 열린 편이었던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인 듣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다. 둘째의 존재감이랄까, 그걸 발휘하고 싶은 책임감에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주기 시작했고, 다년간의 경험과 고통으로 이제는 나도 ‘항복’을 선언해 버렸다. 어머니의 이야기 중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콕콕 집어서 다시 어머니에게 화살을 날려버림으로써, 어머니를 아프게 했고 이전 같으면 열 가지 얘기할 걱정을 지금은 한두 가지에서 끝내도록 원천 봉쇄해 버렸다. 가끔은 오랫동안 발길을 끊기도 했다. 자식들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음으로써 모성이라는 존재감과 영향력을 드러내고 싶었던 어머니는 걱정을 쏟아부을 장소를 잃었다. 그럼, 어머니에게 되돌아간 화살은 어디로 갔을까? 사실 궁금하지도 않다. 그만큼 난 지쳐버렸다.

부모의 노화는 슬픈 일임이 마땅하다. 그러나 사람의 일인지라 길고 긴 장수 시대에 부모의 노화를 지켜보는 자식의 입장은 응당 해야 할 일이라는 책임감, 경제적・심리적인 측면의 피곤함, 부모에게 피곤함이나 지침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생김으로써 따라오는 죄책감 등등이 복합적으로 섞이면서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든 심리상태가 된다. 자식을 키워주신 부모를 향한 부양은 당연한 인간의 도리지만, 그 과정 안에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엄청난 태풍의 눈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누가 내게, ‘당신의 생각은 매우 확증 편향적 생각이오’, 한다면 난 ‘그런가요? 그럴 수밖에요. 내 주변은 다 이런 상황이라서요. 어쩔 수 없네요.’ 하고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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