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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자식교육에 올인한 결과

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by 방구석 관찰자

나 같은 70년대생을 비롯해, 현재의 중년들은 고등교육의 혜택을 받고 공부를 잘하면 사회에서의 성공을 일부 보장받는 경험이 있다. 그래서 자녀 세대의 교육에 열 올릴 수밖에 없는 강력한 동기와 근거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이야, 다 말하자면 피곤할 정도다. 이른바, ‘학군지(표준어에도 없는 단어임에도 표준어 이상의 위력을 갖는다)’의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역피라미드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맹모삼천지교의 현대 버전이다. 심지어, 유치원부터 맺은 인맥이 자녀들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맘카페에서는 자녀의 나이에 맞는 선행학습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고 학원 중 탑은 어디인지 이미 자세하게 공유되고 있다. 누구나 가입이 가능한 곳도 있지만, 상위권 학생들의 폐쇄적인 커뮤니티는 아주 번거롭고 세세한 증명 절차를 거쳐야 가입할 수 있다.


학군지면서 부유한 동네일수록 맘카페의 정보는 폐쇄적이고, 가입 후 활동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조선시대가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면서 신분제는 타파되었고, 우리 세대 역시 공부만 잘하면 얼마든지 신분 상승이 가능한 평등한 세상에 살았음에도, 이 좁은 땅 안에서 여전히 2명 이상만 모이면 계급을 나눈다. 지하철에서 여러 동물들이 명품, 혹은 대학 계급에 따라 등장하며 상대를 압살 하는 밈을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성향이 게으른 면이 있어서, 열심히 끈덕지게 하는 일이 드물다. 자연히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아 모르는 정보가 많다. 사실 온라인에서 캐내고 싶은 정보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반면, 학군지에 사는 내 친구는 그 지역 맘카페에서 최고 등급인 여황제(정확히 밝힐 수는 없고, 대충 이런 식의 명칭이다)이다. 이 친구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내가 볼 수 있는 정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녀는 경기도 신도시에 자가를 소유하고 거주할 정도로 비교적 그 지역에서는 불편함 없이 산 편이다. 아이가 5학년이 되었을 때, 서울의 학군지로 이사를 감행했고, 자신의 집을 전세로 내어 준 동시에 학군지의 허름한 구축에 월세로 들어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전에는 그래도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했으나, 현재는 극빈층이 된 것 같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허덕이게 되었다. 학군지의 인맥은 이미 공고하게 짜여 있어, 치고 들어갈 틈이 없었으나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으로 기존 모임들의 한 영역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이들을 모아 자신의 차량으로 학원에 실어 나르고, 차 안이나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아이들을 실어 오는 셔틀버스 역할로 텃세를 이겨냈다. 아이들은 팀을 짜서 유명한 학원에 비밀리에 등록시켰으며, 주 학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새끼 학원에도 등록했다. 그녀의 남편은 서울 상위권 대학을 나온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자녀에게 쏟아붓는 교육비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저축은 언감생심이고, 어떤 달에는 마이너스 통장도 서슴없이 사용했다. 그러나, 자녀들이 미래를 보장받는 전문직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부부는 최선을 다했다. 인풋이 들어간 만큼 아웃풋을 쭉쭉 뽑아내는 훌륭한 자녀들이 그들을 기쁘게 했다. 그녀도 회사에서는 어엿한 직함이 있는 관리자였지만, 그 무리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회사에서 받는 눈총을 의연하게 무시했다. 자녀 교육이 최우선이었고, 자신의 승진까지 챙기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그 결과, 두 명의 자녀는 모두 인재들만 간다는 고등학교에 합격했고, 친구들은 모두 그녀를 축하했다. 우리는 그녀의 자식 농사가 가장 성공적이라고 치하하며 부러워했다.


그녀의 성공 일색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건, 대학입시를 치를 때부터였다. 가장 정성을 기울인 첫째는 대학입시의 실패를 엄마 탓으로 여기며 그녀와 사이가 틀어졌다. 늦된 사춘기를 고 3 때 겪었고,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지 못했다. 삼수 끝에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지만, 자신의 방에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 날들이 반복되었고, 어쩌다 부모를 만나게 되면 서로를 할퀴는 말만 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엄마가 ‘이 눔이, 감히!’ 하며 자식에게 주먹을 내리치면, 이미 신체적 조건에서 엄마를 월등히 추월한 자식은 한 손으로 가뿐히 엄마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가, ‘엄마, 이쯤에서 그만해. 나도 무력을 쓸 수 있다고요. 예전의 순둥이였던 자식은 이제 없어요.’ 하는 듯 엄마를 등지고, 방문을 쾅 닫으며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이는 제 시기에 수행해야 할 과업을 모두 스킵했다. 대학 생활, 연애 등 독립을 위한 준비 활동은 모두 포기하고, 자신만의 방에서 게임에만 몰두했다. 내 친구는 자식의 실패를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였으며, 심각한 우울증을 얻었다. 아직 서로를 탓하는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요즘은 조금 좋아진 게, 쟁반에 식사를 챙겨서 방문 밖에 두면 그걸 먹고 다시 방 밖에 내놓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물론, 아이는 훨씬 더 많은 끼니를 배달로 해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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