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우리 세대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자녀들을 위해 부모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자녀를 향한 사랑이 동서고금, 어찌 다르겠는가. 그러나, 정작 우리의 자녀 세대 생각은 다르다. 우리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다.
"가난하면 애 낳지 말아야지"…"낳음 당했다"는 사람들, 부정 인식이 이 정도(아시아경제 기사, 2024-01-05 고기정 기자)
2024년 새해를 여는 뉴스에 ‘낳음을 당했다’는 신조어에 대해 분석하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에 따르면, MZ세대(1980~2010년생) 사이에서 '가난하면 자식을 낳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며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2023년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가난과 출산을 엮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MZ세대의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고 있다.
통계청은 결혼을 둔 20~30대의 긍정적 인식이 옅어지고 있는 점, 소득이 감소하고, 부채가 늘고 있다는 점도 저출산을 증가시킨다고 보았다. ('장래 인구추계 : 2022~2072년' 통계청)
‘낳음을 당한 세대’라는 표현은 단순히 출생에 대한 회의나 불만을 넘어,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을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이다. IMF, 금융위기 등 경제적 난관 속에서 태어난 세대가 느끼는 불만과 좌절감을 반영하며, 이 신조어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태어남이 타인의 결정(부모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자식에게 헌신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자녀는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두 세대의 어긋남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자식 세대는 기성세대가 산업화 시대의 온갖 꿀을 다 빨고, 자신들에게는 빈껍데기뿐인 보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문제로 삼는 예는 많다. 우리 세대가 주거의 안정성을 부동산 투기로 치환하여, 자신의 힘만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부동산 가치를 상승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단지 경제 성장기에 살았다는 이유로, 지금은 내놓기도 부끄러운 스펙으로 회사에 입사하여 관리자의 자리에 앉아, ‘꼰대’처럼 자신들을 통제하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경쟁이 비교적 덜한 시대에 편승해 단 열매만 먹고, 자신들은 저성장사회에서 아무리 기를 써도 원하는 것을 보장받는 것은 둘째 치고, 고령화된 사회를 떠받쳐야 한다는 부담감만 늘어간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나로서는 정말 반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나는 남편과 8천만 원짜리 서울 외곽, 경기도와 경계가 맞닿은 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적은 돈으로 결혼하는 것이 그다지 부끄럽지 않았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작게나마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오히려 살림을 모아가는 재미가 있다는 덕담을 많이 들었다. 우리는 수입과 지출을 하나의 창구(대부분은 생활력 강한 아내들이 맡았다)로 통일했고, 또 그렇게 통일해야만 돈이 금방 모였다. 그때도 자녀 수는 경제력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었고, 보통은 한 명에서 두 명이 일반적이었다. 주택 청약은 지금처럼 경쟁률이 높아서, 언감생심이었고, 무조건 집을 빨리 장만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왜냐하면, 부동산 가격은 경제 성장기와 맞물려 계속 상승하거나, 정체하거나 두 가지 중 하나였고, 정체기만 견디면, 상승장에서 한 단계 높은 상급지로 갈아탈 기회도 생겼다. 이른바, 하급지, 중급지, 상급지의 가격 차이가 지금처럼 극복할 수 없는 갭이 아니었다. 우리는 시작은 8천만 원짜리 전세였지만, 우리의 분수와 상관없이 과감하게(!) 서울 외곽 더블 역세권에 소형아파트를 샀다. 매수 가격의 절반이 대출이었지만, 대출을 갚는 게 곧 저축이라 생각했다. 그 아파트는 정확히 5년 만에 두 배로 가격이 올랐다. (내가 뭐, 부동산 투자를 대단히 잘해서라기보다는 그때는 그런 때였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지만, 나보다 2년 먼저 결혼한 선배는 오래된 반포주공아파트를 2억에 매수했다고 한다. 그 시절은 그냥 그런 시절이었다.) 집을 사서 깔고 앉아있기만 하면 내 집이라는 주거 안정성과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