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내가 오래 살았던 A동네는 노인 인구가 많았다. 처음 이사 와서 깜짝 놀란 것은, ‘노인’이 ‘더 노인’의 휠체어를 밀고 산책하는 모습이었다. 걷기 운동도 버거워 보이는, 연세가 지긋한 노인이 아예 움직임이 거의 없는 아주 연로한 노인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모습은, 솔직히 기괴하기까지 했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은 대부분 혼자서는 절대 외출이 불가능한 모습이었고, 뒤에서 미는 노인은 휠체어의 노인에게 말을 걸거나, 담요를 끌어올려 주면서 살뜰히 보살피지만, 내 눈에는 그분들도 부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였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일본의 ‘노-노 부양’이 한국에도 상륙한 것일까. 비교적 젊은 세대가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이사 온 나는, 생경한 풍경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또, 행정복지센터에서 일을 보다가, 옆에서 정정한 어르신이 자신의 나이가 91세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얼추 보기에도 7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노인이, 예전의 노인과 같지 않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내가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정년퇴직하는 선배들은 말 그대로 ‘노인’다웠다. 그 당시, 20대 중반의 내 눈에 비친 그들은, 하얀 백발, 주름진 얼굴, 구부정한 허리 등, 더 이상 근로를 하지 않고 휴식기를 즐겨 마땅한 ‘은퇴’에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은퇴’라는 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중년의 얼굴을 하고 정년을 맞아 퇴직한다. 그리고 남아 있는 날들의 생계를 걱정한다.
물론, ‘동안’, ‘몸짱’이라는 트렌드에 맞춰 자신을 잘 가꾼 사람들만의 얘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나, 쇼핑몰같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업을 지닌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입을 모아 절대 외모를 가지고 나이를 판단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상대에 대한 호칭을 ‘선생님(내가 왜 당신 선생님이야,라고 따지면 할 말은 없겠지만)’, ‘고객님’으로 통일하는 것은, 단순히 일관된 용어의 사용 때문만이 아니라, 상대의 나이를 함부로 예단하여 호칭을 붙일 경우, 그들의 거부감이 상상외로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어르신, 아줌마, 아저씨,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 할아버지 등의 나이가 표면에 드러나는 용어는, 용어 자체만으로도 상대의 화를 돋운다. (사실, 용어는 죄가 없다.) 그냥, 무조건, ‘선생님’, ‘고객님’이 훨씬 일관된 존중이 담긴 호칭이라고 한다. 나이는 들었지만, 예전의 나이 든 사람들과는 차별해서 불리고 싶은 사람들, 아마, 이 책을 읽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50줄에 접어들었음에도, 동네 슈퍼마켓이나, 과일가게에서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면, 속으로는 깜짝 놀라지만, 겉으로는 ‘당신이 뭐라고 부르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 자존감 높고, 품위 있는 고객의 자세를 유지할 테다’라는 자세로 특별히 토를 달지 않는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식탁에 사 온 물건을 쌓아놓고, 씩씩거리며, ‘내가 어딜 봐서 어머니야? 최소한 손주가 있는 할머니한테나 어머니~, 하고 부르는 거 아닌가? 다시는 그 가게 가지 말아야겠어! 아니, 근데 머리에 흰머리가 언제 이렇게 올라왔담? 벌써 뿌리 염색할 시간이 왔네. 흰머리 때문에 어머니라고 착각한 거겠지?’ 이런 의식의 흐름을 타고, 염색만 하면 다시 ‘어머니’의 호칭을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그날의 해프닝을 마무리한다.
내 지인 중 한 분은 언젠가 자신이 ‘지공거사’가 되었다며 지하철에 무임 승차할 수 있는 노인의 나이라고 웃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인은 예전 직장의 선배님이지만, 도저히 만 65세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내가 상상한 만 65세의 모습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지하철에는 내 지인의 연배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그들이 모두 ‘지공거사’라니,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모두 젊어 보인다.
아무튼, 미디어에서 장수 시대 어쩌고 떠들어대지만, 그런 뉴스보다는 현실에서 장수 시대를 실감하는 일이 더 많다. 아마, 우리의 부모 세대도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학이 이토록 발달하여, 병원에서 웬만한 병들은 다 고치는 시대가 오다니, 그분들 시대에서는 예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누가 암에 걸렸다고 하면, 언젠가는 이른 시일 내에 꼭 죽을 사람처럼 비통해하곤 했는데, 지금은 암 4기 판정을 받은 분들도 건강한 투병 생활 후에 완치가 가능한 세상이 왔다. 이제 신체적 질병은 몇몇 희귀병을 제외하고 거의 정복한 게 아닌가 싶은 정도다. 다만, 치매는 아직 정복되지 않은 질병의 영역인데, 치매는 인간의 존엄성을 현격히 떨어트리는 질병이기 때문에, 노년의 가장 두려운 적은 신체의 노화가 아닌, 정신의 노화인 치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