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끼인 세대”, 우리는 누구인가?(2)

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by 방구석 관찰자

자녀의 양육 기간도 갈수록 늘어나, 일명, 자녀의 A/S 기한은 끝이 없다. 내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모두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대학만 가면, 입시에만 성공하면, 모든 게 끝일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자식 교육에 헌신하며 개인으로서의 사적 욕구를 제한하고 철저히 자녀의 필요에 자원을 공급하는 생활을 인내한다. 그러나, 천만에! 이미 그 길을 걸어간 선배들은 알 것이다. 자녀의 뒷바라지는 내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머니의 최후’라는 제목으로, 할머니는 손주 업고 싱크대 앞에서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오매불망하던 입시에서 성공해도, 취업할 때까지 취업 준비 과정을 지원해 줘야 하고, 취업이 끝나면 결혼을 지원해야 한다. 결혼하면 끝이겠지, 생각하며 여기까지만!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지원하지만, 절대 끝은 오지 않는다. 결혼 후에는 아이 낳고, 가정을 잘 꾸려나가게끔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 자녀의 사회적 커리어가 출산으로 인해 방해받지 않도록 손주의 돌봄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녀가 혹시, 불행한 결혼생활로 이혼이라도 하는 날에는 내 자녀는 물론, 손주까지 내가 떠맡아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어느 결혼식장에서 신랑 측 어머님이 축사 도중 신부를 향해, 반품은 금지!라고 말해서 하객들이 폭소를 터트리는 광경을 보았다. 결론은, 내가 죽을 때까지 자식에 대한 걱정과 지원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 사회 전체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자녀의 사회적,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부모의 장수와 자녀의 양육 문제를 양쪽 어깨에 떠안은 우리 세대를 학술적으로 ‘샌드위치 세대’, 혹은 ‘끼인 세대’로 부른다고 한다. 나 역시 ‘끼인 세대’의 초입에 들어간다.


대학생인 첫째는 새내기로서 대학 생활을 즐겨보기도 전에, 캠퍼스를 뒤덮은 취업 준비의 열기에 압도되어, 학점 관리는 기본에다, 취업에 도움 되는 스펙을 채우러 학원에 다녔다. 학원비, 교재비, 용돈 등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군대에 입대해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지만, 나라에서 모든 걸 다 부담해 줄 줄 알았으나, 군인도 부대 안에서 써야 하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자전거, 모기 방충망 등등, 군대에서 당연히 책임져 줄 거라 예상되는 물품들을 내 손으로 사서 넣어줬다. 순진하게도, 아들이 군대에 가면 들어가는 돈이 전혀 없을 줄 알았다! 둘째는 입시가 끝나지 않아, 사교육에 들이는 비용이 우리 생활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교육비가 다른 생활비를 압살 하는 수준이다. 들어간 학원비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이를테면 동전 먹은 자판기 같은 거다. 중증의 치매 증상이 있고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지난한 시간을 거쳐, 지금은 시가 근처의 요양원에 계신다. 요양원 비용은 형제들끼리 분담해서 큰 액수는 아니었으나, 정작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많은 간병 비용이 들었다. 친정어머니는 병원에 갈 때마다 동행해야 할 자녀와 병원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돈’과 ‘시간’의 문제로 늘 허덕댄다. 더 암담한 사실은, 가족들에 대한 나의 지원과 부양책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전통적 효의 실천이 대를 이어 지속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샌드위치 세대니, 끼인 세대니, 하는 용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에 그래 왔듯, 우리가 정성으로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양쪽 세대에 모든 자원을 쏟느라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부모가 100세의 장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후, 자녀들이 우리의 보험이 되어준다는 믿음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급변했다. 우리를 부양해 줄 세대의 수는 턱없이 부족해서 최악의 경우, 한 명의 자녀가 부모 양쪽을 모두 돌봐야 하는 상황이 급증한 것이다. 우리 세대는 그나마 형제들이 있어 부양의 부담을 나눠서 감당했다면, 외동이 대세인 요즘 세태에서는 한 명이 부모 양쪽의 병원을 다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흔할 것이다. 만약, 그 한 명이 결혼했다면, 부부 한 쌍이 네 명의 노인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도 그나마 부모에 대한 효심이라는 윤리에 충실했을 때 얘기고, 요즘처럼 ‘낳음을 당했다’라고 당당히 표현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그들의 억울함도 이해된다. 세상은 갈수록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게다가 여기는 ‘다이내믹 코리아’ 아니던가! 우리의 자녀 세대는 태어나자마자 금융위기, 코로나, 부동산 상승기, AI의 출현,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다른 나라 젊은이들은 한 번도 겪기 힘든 이벤트를 연달아 겪었다. 이 땅은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버티기 힘든 수준의 변화가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다. 극과 극을 오가는 변동성이 심한 이 나라에서, 젊은이들의 탄식과 절망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이미 어른인 우리도 그 시기들을 너무나 어렵게 버텼다는 걸 감안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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