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을 그만두세요

나는 자율신경실조증 환자다.

by 드망

일을 그만두세요.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일을 하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몸을 회복하는데만 집중하셔야 합니다!

내 검사결과를 검토한 기능의학과 의사의 권유였다.


의사의 이 권유는 충분히 짐작했던 일이다.

나 스스로가 요양원 일이 너무 힘듦을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집에 가만있는 것이 더 힘들다고!


검사 결과 내 스트레스 상태는 최악이었다.

의사가 도대체 뭐 하고 살았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

나도 안다.

내 스트레스 상태가 위험 수위임을.

스트레스를 느끼는 감각 자체가 마비되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알츠하이머를 앓던 시어머니를 거의 10년간 간병했다.

어느 누구도 하라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것에 화가 나서 온갖 행패를 부리는 시어머니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소원하던 아들 곁이면 좀 나을까 싶었다. 차라리 내가 힘들고 말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던 웃기지도 않는 착하니즘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하는 치매 시어머니를 모셨지만, 남편부터 시누들까지 어느 누구도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내가 무언가 계획이 있어서 시어머니를 모셔 왔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바뀌지 않았다. 그 상황들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내 신경이 멀쩡하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유달리 엄마의 애간장을 녹이는 아이들을 감당해야 했고, 중간에는 암투병을 하던 친정아버지도 돌봐야 했었다. 그 모든 상황들은 다 지나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간 긴장이 무너져 내리고는 죽도록 앓았다. 병명도 없는 병을 앓았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내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 시간을 지났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치매 시어머니 간병은 끝났다. 그러나 남편과의 사이는 여전히 갈등 중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불만이 많다. 하지만 남편은 내 입장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내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여전히 내가 시어머니를 모신 이유가 '수작'을 부린 거라 믿는다. '수작' 남편의 표현이다. 무슨 수작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들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집안에만 있으면 영영 회복할 수 없게 된다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세상 어느 곳도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아줌마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다.


단 한 곳.

요양원만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힘들지만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시어머니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회복했다.

힘들 때마다 기도하며 버텼고, 그때마다 주님은 사람을 통해 나를 도우셨다.


지금은 그 요양원 일을 통해 나를 회복시키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나의 손길 한 번에 어린아이와 같은 웃음을 짓는 어르신들 때문에 행복하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즐거운 곳이다.

남편과 합법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보장되어서도 좋다.


이런 사정을 말했더니 의사는 그런 상황이면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단다.

우선은 잠을 제대로 자야만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잠에 집중하자고 했다.

최대한 자는 시간을 잘 맞춰서 수면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고 멜라토닌을 처방했다.

마그네슘과 신경안정영양제인 테아닌을 양을 늘려서 200mg을 한꺼번에 먹도록 처방했다.

멜라토닌은 자리에 눕기 전 1시간 전에 먹어야 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부족한 영양분이 너무 많아서 영양제 처방도 다시 받았다.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챙겨 주는 시간을 만드는 것을 우선순위로 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나만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병원을 나서며 딸에게 나 이제 꼴리는 대로 살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했다.

제발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난 솔직히 자신이 없다..

너무 오랜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만 맞추며 살았던 길들임을 벗어날 수 있을까?










keyword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