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필
상점을 돌아다니다가 행사 중인 네이키드 몰트를 발견했다. 병에는 라벨지가 없다. '정말로 벗고 있군(naked).' 설명에는 과실 향이 나는 퍼스트 필(First Fill)이라고 적혀있다.
퍼스트 필로 5만 원대 라인에서는 네이키드 몰트와 몽키 숄더를 자주 비교하곤 한다. 퍼스트 필은 오크통 숙성과정에서 분류되는 종류이다. '퍼스트'라는 네이밍과는 다르게 새 오크통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새 오크 통에 들어가는 것은 버번위스키와 셰리 정도인데 이렇게 사용된 오크통에 스카치 싱글몰트 위스키를 담게 되면 퍼스트 필이 탄생한다. 여러 번 사용한 오크통이 아니기 때문에 강한 아로마가 입혀진다.
네이키드 몰트는 진한 과실 향과 달큼함을 선보인다. 위스키를 잔에 따르고 잔을 가볍게 돌린다. 이때 휘발성이 가장 강한 과일향과 꽃향을 가장 먼저 맡을 수 있다. 비슷한 가격선에 있는 몽키 숄더는 네이키드 몰트에 비해 알코올 향이 조금 더 강하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몽키 숄더는 하이볼로 제조해 마시는 편이 낫다.) 단, 네이키드 몰트는 할인행사에 따라 4만 원대에서 6만 원대로 형성되기 때문에 가격을 잘 보고 구매하도록 하자.
몽키 숄더의 네이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위스키 제조 과정 중 몰팅(Malting)은 불리기, 건조, 싹 틔우기, 분쇄 4가지로 세분화되어있다. 싹 틔우는 과정에서는 보리가 공기가 잘 통하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몰트 맨이 보리를 뒤집어가면서 싹을 틔운다. 과거에는 이러한 전통방식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오랜 시간 사람이 직접 몰팅하는 과정을 거쳤다(현재에는 기계식으로 대체되었다.). 위스키 산업이 번성되었던 더프타운은 이런 몰트 맨들이 '몽키 숄더'라는 관절병에 많이 걸렸다. 이러한 장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몽키 숄더 위스키가 탄생한 것이다(하지만 나는 괜히 이 네이밍에 눈물이 나서 마시지 못 하겠다.).
오크통에 처음 위스키를 채워 숙성하는 퍼스트 필을 경험해 보자. 당신은 어떤 아로마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