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거기 있었니?
나에게 별 의미 없는 사람은 평소에 안개에 뿌옇게 가려져있다. 그러다가 어떠한 계기로 그 사람이 내 삶의 반경에 들어오게 되면 기억 속에 뿌옇게 껴있던 안개가 걷히고 비로소 그 사람이 선명해진다. 내가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그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프로익(Laphroaig)은 J군이 일본에서 사 온 뒤 술장에 계속 있었지만 무지한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피트 향의 매력에 빠져 아일라 위스키에 눈을 뜬 후 머릿속에서 안개가 싹 걷혀갔다. '아! 술장에 있는 그거 라프로익이야!' 흐려진 안개 뒤로 라프로익이 나타났다. "J군! 우리 집에 라프로익있어?" 다급하게 J군에게 물었고 정답은 "Yes." 왜 이제 와서 호들갑이냐는 냥 J군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심지어 라프로익 쿼터 캐스트. 저녁에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당신도 혹시 이 글을 읽다가 술장에 있는 술이 생각난 것은 아닌가? 한 번 가서 찾아보도록 하자. 예기치 못 한 득템을 할지도 모른다(원래 있었던 거지만).
라프로익은 아일라 섬의 대표 위스키 중 하나이다. 아일라 섬에는 많은 증류소들이 존재하는데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피트 향이 강해진다. 라프로익 증류소는 남쪽에 위치해있다. 즉 피트 향이 강렬하다. 라프로익중에서도 라프로익 10년과 라프로익 쿼터 캐스트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 가성비면에서 훌륭하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강렬한 피트와 스모크 한 아로마를 내뿜는다. 그렇다면 이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라프로익 10년에 비해 라프로익 쿼터 캐스트는 숙성 기간이 짧다. 라벨지에 표기는 되어있지 않지만 5년+n개월이라고 한다. 라프로익 10년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숙성기간이다. 하지만 이런 짧은 숙성기간은 피트 향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린다고 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쿼터 캐스트이다. 5년 동안 숙성을 마친 위스키를 1/4 사이즈의 작은 오크통에 나눠 짧게 재숙성을 시킨다. 이로서 오크통에 닿는 면적이 늘어나면서 더욱 복합적인 아로마가 입혀진다. 이것이 라프로익 쿼터 캐스트의 매력이다.
라프로익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가 식도로 넘겼을 때 강한 피트 향과 스모크향이 나지만 이는 크림 같은 바디감으로 부드럽게 내려간다. 재미있는 위스키이다. 만약 직관적인 라프로익을 경험하고 싶다면 라프로익 10년을, 복합적인 아로마를 경험하고 싶다면 라프로익 쿼터 캐스트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