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모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이를 통해 내 결핍을 채운 엄마 중 하나다.
언젠가 아이들은 모두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환경에 의해 그것을 잃게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출처가 불분명하나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또렷하다.
주관적 생각이지만 결핍 많은 어린 시절을 겪은 나는
내가 잃어버린 천재성은 무얼까 생각했다.
내 생각에 아기들이 가진 천재성이라 함은 무언가 대단히 잘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씨앗 같은 것이라 정의하고 싶다.
나는 내가 이야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고 자랐다.
스스로 뭔가를 살 수 있고, 생각하고 선택해서 할 수 있기 시작할 때쯤,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우리 집에는 책이 없었다.
내가 책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왜 우리 집에는 제대로 된 책 한 권이 없었을까
너무 어렸던 날, 쌀도 없었던 우리 집에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종종 내가 어린 시절 더 많은 이야기를 경험하고 자랐다면 조금 더 빨리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뒤늦게 읽으려고 달려드니 읽고 싶고 꼭 읽어야만 하는 책들이 너무 많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는 일본의 에쿠니가오리였다.
특별할 것 없이 소소하게 적힌 듯 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서사가 좋았다.
때로는 <호텔선인장>의 등장인물 같은 재미있는 발상도 좋았다. 주인공이 모자, 오이, 숫자 2다.
그렇게 에쿠니가오리가 쓴 여러 책들을 탐독하고 만난 책은 무라카미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였다. 그때 처음으로 진짜 책의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밤을 새워서 읽었다. 멈춰지지가 않았다. 시간이 가는지 모른다는 게 그런 거였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경험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알아가고 느껴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시댁을 갔을 때 나는 내가 가진 열등감을 마주했다.
남편의 집 책장에는 남편이 어린 시절 보던 책들이 여전히 꽂혀있었다.
나는 어릴 때 가져보지 못했던 전집들이 가득했다.
부러웠다. 아니 과거의 남편이 부러웠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는 게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같이 느껴졌다. 내가 가장 가치 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누리면서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못난 마음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마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기를 키우며 아기가 돌도 되기 전에 몇백만 원어치의 전집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스트를 만들어서 죄다 읽어줬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고 또 샀다.
다 읽어주고 또 읽어줘서 후회하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고, 물려받을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자꾸 그렇게 마음이 동했다.
아기가 크고 이제 보니 그건 어린 시절의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것 같다.
가지지 못했던, 가지고 싶었던
내 마음속에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 날의 나에게 준 선물
내 모습은 흡사 자신이 되고 싶었고 원했던 것을 아기를 통해 이루려는 부모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부모는 잘 알지 못한다. 그 동인이 자신의 결핍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나의 또 다른 어떤 결핍을 채우려 아이를 채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