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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던 날 밤

by Ahnyoung

아주 많이 비가 오던 밤이었다.

커다란 우산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아주 차갑고, 날카로운 빗방울이 쏟아지던

그런 밤

기를 낳기 전에는 사용해 본 적도 없는 체온계를 붙들고

몇 시간을 씨름하다

결국 속싸개로 아기를 싸매고 겉싸개로 한 번 더 칭칭 감은채 밖으로 나섰다.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가 어찌나 원망스러운지

단 한 방울도 아기의 몸에는 닿게 하고 싶지 않아

가슴으로 더 가까이 바짝 끌어안으면서도

열이 펄펄 끓는 아기를 이렇게 안는 게 맞는지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라고는 도무지 맞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밤이었다.


간신히 택시를 붙잡아 타고는 아기가 태어난 병원으로 갔다.

아기는 태어난 지 50일쯤 되었을까

예방접종 후 열이 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나의 질문은 계속해서 나에게 머물러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까 젖 먹을 때 손을 제대로 씻지 않았었나?'

'혹시 내가 휴대전화를 만지고 아기를 바로 만져서 세균에 감염된 건가?'

그리고 그때 나는 면역력이 다 떨어져서 피부염을 앓고 있었다.

결국 나의 질문의 답은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아, 내가 피부염에 걸려서 나 때문에 아기도 열이나 나보다'

아픈 아기를 견디지 못하는 나의 불안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답을 찾아 헤맸다.

예방 접종 때문이라는 답은 나에게 이미 답이 아니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아니 부정적인 모든 일의 원인이

나를 향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아기의 열이 높아질수록 나는 더 처절한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과

너무 작고 이 작은 아기가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불안은

결국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벌벌 떨면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는 나에게

남편은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는 자리가 없었다.

우리 아기보다 더 아프고 힘든 아기들이 많았다.

"여기에서 낳았어요. 제발 진료 좀 봐주세요." 간절했지만 내 간절함은 닿지 않았고

그 간절함은 나에게만 의미 있는 간절함이었다.

남편과 나는 다시 아기를 끌어안고 쏟아지다 못해 넘치는 것만 같은 비 사이로

또다시 택시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기를 받아줬고 침대에 아기를 눕힌 채 의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간호사가 열이 너무 높다며 작은 내 아기의 옷을 모두 벗기고 덩그러니 침대에 눕혀두었다.

그리고 알코올 솜으로 조금씩 닦아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의사는 오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마치 엄마가 없는 아기처럼 너무 외로워 보여서 괴로웠다.

그것은 그저 내가 가진 깊은 마음속의 슬픔이 투사된 것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의사가 왔지만 간단한 검사 후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그저 아기의 열이 떨어지길 계속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해열제를 먹이고, 온몸을 계속 닦아내고 불안에 떨면서

아침에 돼서야 의사는 열이 조금 내렸으니 이제 집에 가서 지켜보라고 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도 그쳤다. 나의 불안도 잦아들었다.

밤을 꼬박 새웠으나 피곤함보다 아기의 열이 내리길 기대하는 두근거림이 더 컸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그날을 떠올리면 어제 같다.

아기는 그 후로도 자주 열이 났고, 아팠다.

하지만 나는 더는 그때처럼 불안에 휩싸이지 않는다.

아기가 아이가 되고, 소녀가 되면서 나도 조금 더 단단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내가 조금 더 단단해져 가는 과정이다.


이제야 나는 그때의 나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다.

괜찮아


한강의 시 '괜찮아'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위로를 건네고 싶다.

오늘, 당신에게 스스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하루가 되길


괜찮아 _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 질 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문학과 지성사, 7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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