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더 많이
아이를 키우며 정작 중요한 순간 아이가 느낄 감정이나 생각을 배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8살이 되던 해 우리는 이사했다.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친정에서 지내며 한 달 동안 이삿짐을 보관해 두었었다.
이사를 하면서 나는 아주 큰 실수를 했는데 그 실수는 아이에게 이별에 대한
슬픔과 작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작길 바라지만 꽤나 깊은 것 같다.
집을 알아보고 이사 준비를 할 때만 해도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인격적 존재로 온전히 인정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사할 집이나, 이사하는 이유와 같은 것들을 아이와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당연히 그래도 되는지 알았다. 무지였다.
구차한 변명을 해보자면 바빴다. 엄마로, 아내로, 학생으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적어도 이사하기 며칠 전에는 얘기를 하고 아이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교하고 돌아온 아이는 이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외할머니 집으로 오게 되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별에 아이는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때 아이가 울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서러움이 내 마음에도 번졌다.
말도 잇지 못하고 우는 아이가 너무 서글퍼 안아주고 달랬으나 소용없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정말 후회스러웠다.
아이에게는 수많은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 사라진 것이었다.
나는 얄팍하고 속물적인 생각으로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옮겼으니 아이가 당연히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조금 더 좋은 집을 아이에게 선물한다고 생각했다.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이 일은 내가 손에 꼽는 실수 중 하나다.
아이는 작은 방이어도 그곳에서 했던 자신의 모든 일들과 자신의 손때 묻는 곳곳을 사랑했다.
아이는 어렸어도 소중한 게 확실했고, 추억도 확실했고, 아끼는 것도 확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는 생각하고 있었고, 그리움도 알고, 몸은 작아도 어른 보다 더 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왜 나는 아이의 감정은 작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 아예 아이의 입장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까
16살이 된 아이는 아직도 그 집을 그리워한다. 현관문 앞까지 찾아가 함께 보고 온 적도 있다.
벽에 그린 그림, 키재기 한 흔적, 책을 쌓아 만든 아지트 같은 공간, 혼자서 숨기 좋은 한 구석
여름날 시원이 바람이 불던 거실의 풍경, 소파에 기대 잠들었던 달큰한 기억
모두 아이의 이야기가 담긴 곳인데, 정작 작가의 허락도 없이 페이지를 넘겨버린 셈이다.
그 뒤로 아이는 집에 대해 끝없이 애도했다.
곳곳을, 그곳에서의 장면 장면을, 순간순간을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이랬었지, 저랬었지 하며
무식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위로라고는 좋은 분들이, 아주 좋은 분들이
우리 집으로 이사 왔다는 말 뿐이었다.
그 뒤로 나는 집안의 작은 일도 아이와 상의했다. 작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서
우리 가족의 일원이며 결정권을 가진 존재로
아이는 여전히 이사하기를 싫어한다. 새롭고, 더 좋고, 넓은 것보다
익숙하지만 자신의 온기가 담긴 따듯한 곳을 사랑한다.
나는 그런 아이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