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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카드

by Ahnyoung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보통날이라고 생각했던 하루가

벅차다 못해 과분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그날도 어느 날과 다르지 않게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집안 정리 후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는데 작은 카드가 놓여 있었다.



엄마 안녕 키큭키키

아까 같이 웃으면서 수다 떨면서

엄마가 해준 카레 먹을 때 너무 행복했어

산책 나올 때도 그렇고 행복했어

오늘 나 웃게 해 줘서 고마워

학교 생활도 너무 설레고 행복한데

학교에서도 그렇게 웃을 일이 많은데

집에 와서 또 웃으니까 너무너무 행복했어

사소한 거지만 이 행복을 엄마도 느꼈으면 좋겠어서 사랑해!

작은 편지에 행복을 가득 담아서 00가-



작은 편지에 어찌 이렇게 큰 마음을 담을 수가 있을까

어디에서 이런 작은 천사가 왔을까

부모는 이런 순간들을 쌓아 아이를 키우면서 견뎌야 하는 그 묵직한 시간을 견디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카드는 아이를 키우면서 받은 수많은 편지와 고백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드 중 하나이다.

내가 힘들다 느껴지는 순간이면 여과없이 꺼내보게 되는 이제는 내게 마법의 카드 같은 그런.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힘은 아이가 가진 능력이다.

어쩌면 자라면서, 어른이 되면서 그 능력을 점점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아이의 그 능력을 오래오래 지켜주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이의 이런 고백은 내가 있는 곳의 공기를 바꾼다.

아이가 느낀 행복이 온 집안에 충만하게 내려앉는다.

행복을 느끼고 자신이 느낀 좋은 것을 나누고 싶고, 엄마가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이 카드를 쓰는 아이의 마음은 무슨 색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보라색을 좋아했으니 그 마음에 보라색 하트가 넘쳐

흘러나온 것은 아닐까

이 카드를 쓰는 아이의 표정은 어땠을까

예쁜 미소가 절로 먼저 카드에 까지 묻어난 것은 아닐까

아이가 말하는 웃을 일은 어떤 일일까

어쩌면 어른인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그저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작은 대화와 쉬는 시간 그 짧은 즐거움이겠지

나는 그런 순간을 행복이라고,

웃을 일이라고 말할 수 있나

순수하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중학생이 되고 고입 준비를 하며 갈수록 아이의 웃을 일이 줄어드는 거 같아 마음이 심란한 요즘

걱정과 달리 또 그 안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느끼고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또 아차 싶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통화 좀 할게" 하고는

방문도 안 닫고 침대에 누워 어찌나 깔깔거리고 웃는지, 그 웃음이 온 집안에 번진다.

문을 닫아 줄까 하다가 그 웃음소리가 너무 소중해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냥 둔다. 그리고 아이의 그런 모습은 자꾸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 아이의 행동 대부분이 이해된다. 나도 그랬었지 하며 또 웃음이 난다.


며칠 전 새 학기가 시작되고 담임 선생님이 아이에 대한 내용을 적어서 보내라고 하셨다.

아이를 소개하는 칸에는 정말 멋진 아이라고, 옳고 그름을 알고, 책임감도 강하고 내가 느낀 아이의 예쁜 모습을 잔뜩 적고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면

말씀해 주시면 집에서 더 잘 지도하겠다고 적었다.

부모가 예쁘게 보지 않는 아이를 교사가 예쁘게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이의 부족한 면도 적지만, 일단 집에서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아이인지, 아이의 사랑스러운 면을 가득 적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이의 중3 시간에 대해 바라는 점을 작성하는 칸이 있었다.

곰곰이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며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적어내려 갔다.

" 아이가 어른이 돼서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많이 만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많이 웃고, 떠들고, 열심도 내보고 그렇게,

선생님도 그런 추억 있으시죠? ^^

아이들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학업과 경쟁에 지친 아이들이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될까 봐, 아직 너무 여리고 작은 마음에 생채기라도 날까 봐, 늘 요즘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동네에서 시험 후에 어떤 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면 정말 숨이 턱턱 막힌다. 미안한 마음에 슬퍼할 자격도 없는 것 같다.나도 어른으로서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동조한 것은 아닌지,

어쩌면

아이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다 앗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부모로서 나는 그 능력을 지켜주기 위해 오늘은 무얼 할 수 있을까 또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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