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을 보는 아이

by Ahnyoung

4월에 우박이라니.
더웠다가 추웠다가, 날씨를 가늠할 수가 없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절로 와닿는 요즘이다.


어느 날, 아이는 학교에서 <붉은지구>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와서 엉엉 울었다.
지구가 너무 아프다고
그리고 나와 남편을 소파에 앉히더니

그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보게 했다.
아마 우리도 느끼고, 행동하길 바랐나 보다.
아이는 그 내용이 너무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이는 그렇게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고

경각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친구다.

그 후, 아이는 학교에 매일 싸가던
500ml 생수를 더는 사지 말라고 했다.
텀블러에 물을 담아 다니겠다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했다.

덕분에 일이 바빠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일이 많아지면
여지없이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나가서 먹거나
집에서 해먹으려 노력하게 된다.

아이는 하늘과 바다와 산과 땅이 소중하다는 것을

어찌 그리도 잘 아는 걸까?

아이를 생각하다 보니,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가 다섯 살이던 어느 여름날.
함께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산에 걸린 구름을 보았다.
아이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노래하듯 말했다.

"산할아버지가 구름 모자 썼네~"

그리고는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더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속삭였다.

"바람아, 시원하게 해줘서 고마워."

그 작은 입술에서 나온 고마움의 인사는

그때도 지금도 내 마음을 울린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연과 친구였다.

구름을 모자로 삼아 상상하고
바람에게 감사할 줄 아는 아이.

그리고 이제는, 지구를 아끼고 싶은 마음까지 품은 아이가 되었다.

가끔 딸은 학교가 끝나면 집까지 40분을 걸어온다.

내가 데리러 가겠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한다.

"걸어오면서 나무랑 꽃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그런 게 좋아."

나는 그런 아이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빠르게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혼자 느리게 걷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나는 또 배운다.

아이를 따라
산할아버지가 쓴 구름모자를 보는 마음을
바람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텀블러를 챙기며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keyword
이전 17화열심히 안 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