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나는 내 삶에 ‘안전한 울타리’가 있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늘 불안정했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함을 견디며
살아왔던 것 같다.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중요한 일을 해야 하거나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정말 울타리가 필요할 때마다,
나는 늘 혼자라고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기댈 곳이 필요했던 나는, 든든하게 옆에 있어주는 남편이 참 좋았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 나는 보호받고 있구나.’
‘나는 과분할 만큼 사랑받고 있구나.’
그런 감정이 깊어졌고, 우리는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어렸던 우리는 선택이 주는 무게를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의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남편은 학업을 포기하고 나와 아이를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성실함이라는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며,
내가, 우리 아이가 어떤 것도 부족하다 느끼지 않게 해주었다.
그러다 아이가 학교에 갈 무렵, 나는 다시 공부하고 싶어졌다.
1년간 준비한 끝에 대학원에 합격했고, 남편에게 전했다.
그날 남편은 케이크를 사들고 집에 왔다.
살면서 나를 지탱해준 소중한 순간들이 몇 있는데, 그날은 그중 하나다.
저녁을 먹고, 남편은 케이크를 준비하며 아이에게 말했다.
"○○가 이제 학교에 가는 것처럼, 엄마도 다시 학교에 다니는 거야.
다시 학교에 가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거야.
엄마가 그걸 해낸 거니까, 우리가 오늘 많이 축하해줘야 해."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울었다.
아마도 ‘학교에 간다’는 말이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로 들렸던 것 같다.
"엄마 가지 마.
엄마 학교 가면 나랑 같이 많이 못 있잖아.
엄마 학교 가지 마."
평소 온화했던 남편은, 그날 조금 언성을 높였다.
"엄마도 학교 가야지.
왜 너만 학교 가?
엄마도 하고 싶은 거 해야 돼."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남편은 나도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나에게도 세상을 열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랑 뭐 좀 해보자고 했더니, ○○가 너 공부시킬 거라던데. 그게 무슨 말이니?"
놀고 있는 나와 작은 가게라도 함께 하길 바라셨던 어머님께,
남편은 ‘아내를 공부시킬 거’라고 말했다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오랫동안 나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렇게 남편의 사랑과 희생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까지 이어갔다.
이제는 강의도 하고, 스스로 돈도 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나에게도 조금 기대어줘.
이제 나도, 당신의 울타리가 되어줄게.
스물다섯, 스물여덟.
어린 나이에 결혼한 우리는 부딪히고 흔들리면서도,
1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살아냈다.
서툴고 힘들어도 서로를 놓지 않고, 울타리가 되어주기 위해 달려온 당신에게,
나도 이제 무쇠가 되어주고 싶다.
이 시간은 우리가 늙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라고 믿는다.
당신의 수고와 헌신은 결코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우리가 함께 쌓아온 겹겹의 시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당신의 성실함과 수고를 의심한 적이 없다.
지금 우리가 머무는 이 낯선 정거장이 조금 춥고 어색할지라도,
결국 우리는, 우리 가족 모두 함께,
멋지게 이 시간을 지나쳐 갈 것이다.
그러니 웃어줘요.
당신은 웃을 때 가장 아름답고,
맛있게 먹을 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