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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토마토

by Ahnyoung

아기를 낳은 동생이 엄마 집에 와 있다.
생후 5개월 된 아이와 함께 지내느라 피곤할 텐데, 얼굴은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오랜만에 둘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물었다.

“아기 좀 더 크고 나면 뭐 하고 싶어?”

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아…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어.”

그 말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질 찰나,
동생이 덧붙였다.

“나는 춤을 출 거야.”

뜻밖의 말이었다.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춤을 춘다고?”
그러자 동생은 장난스럽게 한 동요를 불렀다.

“나는야 케첩 될 거야~ 나는야 주스 될 거야~ 나는야 춤을 출 거야~ 멋쟁이 토마토!”

노래는 귀엽고 유쾌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말은 어쩐지 울컥하게 다가왔다.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과 ‘춤을 추겠다’는 말.
겉으론 모순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상태 아닐까.

어떤 토마토는 케첩이 되고, 어떤 토마토는 주스가 된다는데,

한 토마토는 그냥 춤을 추겠단다.
그 노래 가사가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뭘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살아가다 보면,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말한다.
‘너는 뭔가가 되어야만 한다’고.
그래야 의미 있고, 그래야 살아 있는 거라고.

내 동생은 똑똑한 사람이다.
중국에서 유학했고, 꽤 괜찮은 회사에 다녔다.
언어 감각도 뛰어나고, 일머리도 좋고, 돈도 잘 벌었다.

누가 봐도 ‘잘 나가는 사람’이었고, 나도 늘 자랑스러웠다.

그런 동생이 지금은 육아에만 매달려 있다.
밤낮이 사라진 하루하루,
아기 울음에 맞춰 움직이는 일상.
그리고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을 깊게 건드렸다.

나도 아기를 낳고 그랬다.
이유 없는 우울이 덮쳤고, 공황처럼 휘몰아치는 불안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를 ‘증명’하려 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는 아직 유능하다고.
일하고, 공부하고, 성과를 내고,
몸과 마음이 부서질 만큼 달렸다.

그런데…
그래서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까?

동생의 “춤을 출 거야”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맴돈다.
그건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의미를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믿음.

내가 너무 오래 잊고 있었던 감각.
그걸 동생은 한 마디 말로, 한 줄의 동요로 꺼내놓았다.

멋쟁이 토마토.
그것도 참 괜찮다.
형태가 뭐든 상관없다. 케첩이든, 주스든,
아니면 그냥 흙냄새 나는 작고 둥근 토마토여도.

그냥 나답게, 내가 익어가는 속도대로,
언젠가 나도 춤을 추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니라,
살아있기에 절로 흘러나오는 그런 춤.


당신은 어떤 춤을 추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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