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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다는 것, 다른 내가 되어간다는 것

by Ahnyoung

나는 늘 예민하고, 번거로운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옷에 무언가 묻거나 젖는 일, 손에 짐을 잔뜩 들고 다니는 일처럼
귀찮고 불편한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추운 날 왜 굳이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는지,
여름날 물놀이가 왜 즐거운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나는 눈이 와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아이 중 하나였다.

그런 내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결혼을 하고 둥글둥글한 사람과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나의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정리되고, 예민함도 줄어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춥고, 조금 번거로워도
아이와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일이 즐거워졌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좋아졌다.

무엇보다, 아이가 눈 오는 날의 설렘과
비 오는 날의 낭만을 꼭 느끼며 자라길 바랐다.
그 마음이 나를 바꿔놓았다.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옷이 좀 젖어도 괜찮고, 무언가 묻어도 괜찮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가 원하는 대로
결코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 깨달음은 오히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들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눈이 오면 우리는 꼭 밖으로 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놀이를 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는 세상이 다 자기 것인 듯 웃었고,
우리는 수많은 눈오리를 만들며 추억을 쌓았다.

비 오는 날이면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첨벙첨벙 물을 밟으며 뛰어다니고,
비를 맞으며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낭만을 누렸다.

그 모든 순간들이
언젠가 아이가 어른이 되어 떠올릴 귀한 자산이 되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이 덕분에 나도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갔다.
아이를 위해 했던 일들이 결국은 나를 성장시켰다.
엄마가 된다는 건 이전과는 다른 나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싫어했던 일, 불편해했던 순간들을
아이도 똑같이 느끼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선택을 하게 했다.

비 오는 날, 손을 꼭 잡고 달리던 기억.
물웅덩이를 일부러 더 크게 밟던 장난.
눈 오는 날, 소쿠리에 눈을 가득 담아 집으로 들여와
녹기 전까지 신나게 놀았던 날들.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냉동실에 넣기도 했다.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
작고 사소하지만

가장 따뜻하고 행복했던 날들을
우리는 함께 살아냈다.

그리고 지금, 어느덧 열여섯이 된 아이와는
더 이상 그렇게 놀 수 없지만,
그때의 시간들은 아직도 내 안에 생생하다.

그 시간들은 아이와 내 마음속에 남아,
우리를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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