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늘 내 옆에 붙어 함께 자던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기 방에서 혼자 자기 시작했고,
비밀도 많아졌다.
일기장에는 자물쇠가 달렸고,
방 문이 닫혀 있는 날들도 점점 늘어갔다.
사춘기의 시작이었다.
이미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막상 피부로 마주한 서운함과 헛헛함은
상상보다 훨씬 더 낯설고 깊었다.
내 품에 안기던 아이, 엄마를 찾던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낯선 손님이 찾아온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예민하고, 불만이 많은 손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머리로 아는 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처음 겪어보는 아이의 퉁명스러움과 감정 기복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고,
나 역시 점점 아이 못지않게 예민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품어주고, 안아주고, 기다려주었더라면…
그렇게 상처 주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의 나처럼, 그때도 이 모든 걸 알았더라면…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가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나는 너무 많은 실수를 했다.
그 실수를 만회하고, 아이와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싸우고, 사과하고, 편지를 쓰고, 함께 울고...
그 모든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아이가 사춘기를 겪을 때, 나는 어른이지 못했다.
치유되지 않은 내 안의 어린아이가
툭툭 튀어나와 아이와 마주 부딪혔다.
그러니 누구 하나 품어주지 못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처만 남겼다.
아이라는 존재를, 엄마로서 온전히 안아줄 수 있게 된 건
끊임없이 지난날을 반추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이후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감정 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거리를 두고, 아이를 나와는 다른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려 애썼다.
아침마다 느릿느릿 씻고 준비하는 아이를 보며
짜증이 올라왔고,
학교 안 갈 거냐며 다그치고,
학교 가기 싫다는 말에 화를 냈다.
그 시기가 어떤 시기인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왜 그토록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따뜻하게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후회되는 장면들이 너무나 많다.
아마 당분간 나의 글은
그런 시간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