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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주는 두려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 아이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면

by Ahnyoung

중학생이 된 아이는 학업과 시험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서 자퇴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처음엔 흘리듯 말하길래 그저 힘든 마음의 표현이겠거니 했지만,

어느 날은 진지하게 “자퇴하겠다”고 말했다.
그날만큼은 이전과 달랐다.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자퇴하겠다는 결심이 느껴졌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혹시 아이가 정말 지옥 같은 곳에서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반대하면 더는 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이와의 갈등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이가 정말 자퇴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부모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밤새 고민했다.
하지만 정작 "안 된다"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 다음 날은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심리치료 과목 수업이었는데, 우리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늘 지난 한 주간의 감정이나 고민을 나누곤 했다.
그날은 우연히도 교수님이 내게 "이번 주는 어땠어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이가 자퇴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때 교수님께서 이렇게 물으셨다.


“선생님, 혹시 너무 힘든 일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털어놨는데,

그 사람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혹은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으세요?”


그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리고 교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선생님 아이는 지금 말 그대로 '아이'잖아요.
뭔가를 결정할 때, 자신이 가진 인식의 지평 안에서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그래서 엄마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이유를 함께 설명해 주고,

엄마의 생각을 들려주는 게 필요해요.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은,

오히려 그 결과까지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들릴 수 있어요.
지금은 보호받고 지켜져야 할 시기잖아요.
물론 자퇴를 선택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느낌엔 아이가

진심으로 자퇴하고 싶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교수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박혔다.

그날 밤, 나는 아이에게 자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퇴를 하면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부드럽게 설명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아이는 오히려 안도했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좋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욕심까지 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이의 “자퇴하고 싶다”는 말은 자신을 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자기를 붙잡아주길 바라는 간절한 신호였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두려워하며, 책임을 아이에게 넘기는 말로 대응했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 아이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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