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불 꺼진 거실 한가운데 내가 있다.
쇼파에 무릎을 끓고, 얼굴을 파묻은 채로.
몇 시간이 지나도 그 자세 그대로다.
잠시 같았지만,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도 잠은 오지 않는다.
결국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면, 알람이 울리기 훨씬 전에 눈을 뜬다.
겨우 두 시간 자고 출근하면, 며칠을 못 잔 사람처럼 오전 내내 피곤하다.
피곤해서 실수를 할 때면 직원들은 말한다.
“괜찮아, 힘내.”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야근을 하고 집에 오면, 나는 또다시 쇼파에 얼굴을 묻는다.
이런 날이… 매일 반복된다.
슬픈 날도, 기쁜 날도, 화가 나는 날도 있었을 텐데
내 표정은 언제나 그대로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숨을 쉬면 폐로 공기가 들어와야 하는데, 옆구리로 새어 나가는 것만 같다.
주말엔 출근하지 않으면 거의 잠만 잔다.
외출도 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연락하던 친구들도 연락을 끊었다.
그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그 말도 이제는 지겹다.
부모님은 늘 말한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부모님은 새하가 ‘조용해서 문제없는 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우주가 얼마나 큰지 알 순 없지만, 그 안에서 나 혼자 떠 있는 기분이다.
1년 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월 2회 받고 있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약을 먹어도 감정은 그대로다.
요즘은 자꾸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감정이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또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없어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
“이 넓은 지구에서 한 명 사라져도 누가 알까?”
생각들이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살아가는데,
나는 왜 웃을 수 없을까.?
내가 무서운 건 울음이 터지는 게 아니라,
눈물이 말라버린 것이다.
슬프지도,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은… 그런 이상한 상태이다.
감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는 없다.
부모님은 말한다.
“착한 딸, 예쁘게 자라줘서 고마워.”
직장에서는 말한다.
“세하 씨는 섬세하고 꼼꼼해서 일을 너무 잘해요.”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이다.
문제는… 내 마음이다.
어느 날 갑자기 큰 사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는 이렇게 변해갔다.
그날도 불면증으로 날을 새고 아침이 찾아왔다.
나는 회사를 향하는 대신,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몸이 아니라 ‘존재’가 가벼워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간호사가 불렀다.
“윤세하 씨.”
의자에 앉자, 의사는 나의 진료 기록을 훑어보았다가
잠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요즘…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여는 순간, 울어버릴 것 같아서이다.
아니, 사실은… 울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서이다.
의사는 말했다.
“입원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누군가 내 앞에 작은 문 하나를 조심스레 열어준 것 같았다.
그 문 안에 들어가면
잠시라도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한 순간이었다.
내가 입원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죽어가는 감정을…
더 늦기 전에 붙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입원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