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도시의 아침에는 비밀이 많다

#사랑은 때때로, 물감처럼 스며든다.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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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아홉 시,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예쁜 아가씨.”


잠시 미소를 지은 나는 답장을 보냈다.
“좋은 아침이긴 한데요, 저 아줌마입니다.”



그는 장난기 섞인 말투로 다시 답했다.
“제 눈에는 여전히 스무 살 아가씨입니다.”



“딸이 아가씨예요. 누가 들으면 웃어요.”
“예쁘다는 뜻일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내일 오후 함께 산에 오르자고 제안했다. 나는 짧게,
“네.”



그는 덧붙였다.
“신의 은총으로 뵙기를 소망합니다.”



그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신의 이름까지 거론될 일은, 더더욱 아니기에.



다음 날, 공원 입구에서 마주한 그는 변함없는 미소로 나를 맞았다.
차에 오르며 나는 부탁했다.



“2시 전에는 꼭 집에 데려다 주세요.”



“물론입니다. 반드시 약속 지켜드릴게요.”

차는 작은 언덕 아래에서 멈췄고, 우리는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산길, 무성한 풀잎 사이로 맑은 공기가 스며들었다.



그의 손이 내 손을 감싸자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얼마간 걸었을까.?
그는 갑자기 나를 안아 올렸다.




당황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숨결과 체온,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정상에 다다르기 전, 그는 다시 나를 품에 안았고, 입을 맞췄다.
그저 입술이 닿았을 뿐인데, 힘이 빠졌다.



긴장과 전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바람 소리만이 산속을 부드럽게 감쌌다.



문득 나는 생각했다.
이 순간을 기다린 건,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른다고.

정상에는 벤치가 하나 있었다.



그는 물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마치 입에 물을 부어주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나는 그 물을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감촉은 생명수처럼 낯설고도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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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손을 잡고 큰 소나무 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나를 나무에 기대게 하더니,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에서 망설임 없는 진심을 읽었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나는 마음과 몸을 모두 내어주었다.
거창한 의미도, 죄책감도 없었다.



그 순간엔 오직 바람과 나무, 그 사람, 그리고 나뿐이었다.

하산 길에도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어색함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오래된 연인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그는 말했다.
“앞으로는 ‘오빠’라고 불러줘.”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오빠.”



그가 다시 말했다.
“넌 이제 내 여자야.”



나는 물었다.
“그럼, 오빠는 제 남자예요?”



“그래.”

나는 장난스레 말했다.
“또 다른 여자에게도 이렇게 말하겠죠?”




“아니야.”

믿고 싶지 않았지만, 믿고 싶었다.
여자는 마음을 열기 전까지는 경계하지만,
한 번 열면 모든 걸 내어주는 존재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의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차에서 내리기 전, 나를 품에 안았던 그 따뜻한 온기.
그 순간 나는 잠시나마, 사랑받는 사람으로 존재했다.



오후에 , 남편은 이미 집에 와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조금 멀리까지 산책하고 왔어요.”
그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기분 탓일까, 마음 한켠이 싸늘해졌다.

샤워를 하며 몸을 씻어냈지만, 감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의 체온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서 미약하게 남아 있었다.

밤이 되자, 남편은 평소처럼 나를 안았다.



나는 감정 없는 얼굴로 그의 품에 몸을 맡겼다.



그 후, 그가 조용히 물었다.
“당신… 혹시 다른 남자 생겼어?”

나는 웃으며 넘기려 했다.



“무슨 말이에요. 괜한 상상 하지 마요.”


그는 한동안 침묵했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며칠간, 나는 나조차 내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예고 없이 다가와, 내 안의 감각을 흔들어놓았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감정을 갈망해 왔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평온했고, 주말은 흘렀으며,
가족과의 영화 약속도 어김없이 지켜졌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엔
작은 흔들림이 남아 있었다.



그날의 바람, 그의 눈빛, 산 정상의 고요한 시간.



사랑은 때때로, 물감처럼 스며든다.



그리고 그 색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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