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킬 수 없는 첫 입맞춤
여자들은 외출할때면 속옷을 가장 많이 신경쓴다.
검은 레이스와 최소한의 천 면적으로 이루어진,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속옷 상하의를 챙겨 입고,
운동복을 위에 가볍게 걸친 채 집을 나섰다.
경비실을 지나니, 발걸음은 자연스레 공원 쪽으로 향했다.
싱그러움 가득한 키 큰 소나무들이 반기듯 서 있었고, 그 풍경에 마음은 더욱 들떴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가 오후에 일이 좀 있어.”
그러자 동생도 “나도 남편 사무실에 가야 해.”라며 답했다.
무심코 “내일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옷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평소처럼 속옷 위에 운동복만 입을까, 아니면 검정 티셔츠 하나쯤 더 걸쳐야 할까.’
티 하나 입는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결국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품위다.”
몸에 열이 많은 나는 겨울에도 두껍게 입지 않는다.
그날도 검정 티셔츠 하나를 안에 받쳐 입고 혼잣말처럼 “오늘은 품위다.”
콧노래를 흥얼이며 집을 나섰다.
기분은 상쾌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10시 정각 도착을 목표로 걷던 중, 공원 입구가 보였고 시간을 확인하니 9시 56분.
평소보다 빠른 걸음이었다.
멀리서 회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담배를 끄고 다가와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회장님, 목소리가 너무 좋으세요. 성우하셔도 되겠어요.”
그는 웃으며 나를 자신의 차량으로 안내했다.
둘 다 편안한 운동복 차림이었다.
차에 오르자, 실내는 남편의 차량과는 전혀 달랐다.
남편 차는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정갈하지만,
회장의 차는 담배 냄새와 종이, 비닐봉지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털털하고 소탈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운전 중 회장은 공원 근처에 거주하고 있어 가끔 산책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몇 번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이 작은 공원에서 어찌 서로 스쳐 지나갔을까.’
나는 기억이 없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는 담배를 자주 피우는 듯, 차 안에도 담배 향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천변에 도착했고, 차량은 중간 지점에 멈춰섰다.
“걷기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한 시간 정도 걸은 후, 그다음은 생각해봅시다.”
차에서 내리려던 찰나, 나는 마스크를 챙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큼직한 골프용 파란 우산을 펼쳤다.
“이 우산은 다섯 명이 써도 비를 피할 수 있어요.”
평일이라 천변은 한산했다.
우산을 함께 쓰고 걷기 시작했다.
낯선 남성과 이렇게 가까이서 함께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천변을 걸으니, 세상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는 대리운전 사무실을 운영한다고 했다.
오전엔 체력 관리를 위해 걷고, 저녁 6시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퇴근한다고.
그렇게 5년을 살아왔다며, 이젠 완전히 ‘올빼미’ 생활이 되었다고 웃어 말했다.
그러다 그는 우산을 나에게 맡기고 잠시 떨어져 담배를 피웠다.
“같은 우산 안에서 피우셔도 괜찮아요.”
담배 냄새가 왠지 궁금했다.
“담배 피우세요?”
“아뇨, 전혀요.”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번 피워볼래요?”
망설임 없이,
“네.”
그가 피우던 담배를 그대로 내게 건넸다.
“깊게 한 번 빨아보세요.”
말을 따라 그대로 한 모금 들이마신 순간,
목으로 뭔가 큰 덩어리가 넘어오는 듯한 느낌에 기침이 터졌고,
머리는 순간 어지러워졌다.
걸을 수가 없었다.
마약은 해본 적 없지만, 그 느낌이 마치 그것 같았다.
그는 내 어깨를 감싸며 돌 위에 앉게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걸으려는데 그의 어깨에 내 가슴이 닿았고,
그 미묘한 접촉에 나도, 그도,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배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정신은 곧 맑아졌다.
그가 손을 내밀었고, 나도 모르게 그 손을 잡았다.
우산을 쓰고, 그는 내 손을 꼭 쥔 채 걸었다.
신기하게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5분쯤 지나자 손에 땀이 차서 말했다.
“회장님, 손에 땀이 나서요. 이제 손 놓아도 될까요?”
“아, 그래요. 그럼 반대쪽 손으로.”
그는 반대 손을 내밀었고,
나도 그 손을 다시 잡았다.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았다.
잠시 후 벤치에 앉아 생수를 꺼내 손에 뿌려 씻었고,
그는 내 손을 직접 씻어주었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이왕 씻어주신 김에 제 손도 씻어주세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고,
“혼자 씻으세요.”라며 웃었다.
그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생각보다 오래 걷지는 않았다.
회장은 하루 한 갑 반의 담배를 피운다 했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도 이렇게 손잡으시나요?”
“아뇨, 사람 봐서요.”
또 웃음이 터졌다.
“그럼 전 ‘아무나’는 아니네요.”
그 순간부터 주변의 갈대나 풀, 풍경보다도 그의 말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뒤에서 자전거가 달려오자, 그는 오른손으로 내 어깨를 끌어안으며 외쳤다.
“조심하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고,
그의 가슴과 나의 가슴이 밀착되었다.
강렬한, 단 몇 초의 순간이었다.
“수위가 점점 높아지네요.”
“혹시 다칠까봐요.”
“회장님, 여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 많이 하셨죠?”
“아뇨,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성추행으로 신고할 뻔했네요.”
“신고 안 하실 것 같아서요. 사람 보고 하는 거죠.”
“다른 여자한테는 그러지 마세요.”
“네.”
11시 30분이 되어 회장이 말했다.
“점심시간이네요. 식사하시죠.”
나는 조심스레 답했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요. 밥은 좀 부담스럽고… 차 한 잔 괜찮으세요? 제가 살게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간다고 하실 줄 알고 걱정했어요. 안 가신다니 다행입니다.”
사실 배가 고팠지만, 처음 만난 이와 식사까지 하는 건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의 차량을 타고 외곽 천변 근처에 있는 한적한 카페로 향했다.
15분쯤 달려 도착한 곳은, 나무로 꾸며진 통나무 인테리어의 작은 카페였다.
입구 주변에는 나무들이 둘러져 있었고,
근처엔 몇 채의 집만 덩그러니 놓인 고요한 마을이었다.
평일 낮이어서 그런지 손님도 많지 않았고, 실내는 고요하고 차분했다.
우리는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그가 계산하려 했지만, 내가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게 해준 그에게, 작은 감사의 표현이기도 했다.
커피 한 잔쯤은 내가 대접하고 싶었다.
나는 설탕 없이 마셨고, 그는 설탕을 듬뿍 넣었다. 거의 꿀물처럼.
회장은 키 180cm에 몸무게는 약 80kg 정도.
인상은 다소 강해 보였지만, 말투는 순박하고 천진했다.
왠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다음에 밥 사드릴게요.”
그가 핸드폰을 내밀며 번호를 입력해 달라고 했다.
나는 번호를 눌렀고, 그는 ‘00사장’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했다.
“밤에 술 드시고 전화하거나 하시진 않겠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전 일출 후, 일몰 전에만 연락드립니다.
토요일은 반공휴일이라 오전만,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니 연락하지 않아요.”
그렇게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12시가 넘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그가 말했다.
“토요일 오전 괜찮으시면, 근처에 산 하나 있는데 같이 가보시겠어요?
30분이면 정상까지 올라갑니다.”
문득 생각났다.
토요일은 남편이 운동하러 나가는 날이다.
나는 대답을 미루었다.
“조금 생각해볼게요.”
“그럼 내일, 금요일 저녁 5시에 다시 여쭤볼게요.”
카페를 나와 천변을 따라 5분쯤 달리던 그는 차를 멈췄다.
“잠깐만, 10분만 이 강물 좀 보고 가요.”
그는 왼손을 내밀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몸을 돌려, 나를 꼭 끌어안았다.
거부할 수 없었다.
그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체온이 따뜻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안에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격렬하게 탐했다.
순간적으로 몸 전체에 전율이 일었고,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살짝 그를 밀어냈다.
그의 입술에 묻은 내 루즈를 조용히 닦아주었다.
거울을 보며 루즈를 다시 정돈한 뒤 말했다.
“얼른 가요. 오후에 약속이 있어요.”
이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다.
차로 돌아오는 동안, 그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두 사람의 손이 이야기를 대신했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자 그가 말했다.
“토요일, 꼭 같이 가요. 내일 연락드릴게요.”
그는 나를 다시 한 번 깊이 끌어안았다.
나도 마치 무언의 약속처럼 그를 꼭 안아주었다.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걸어오는 길, 그의 마지막 포옹이 자꾸 마음속에 맴돌았다.
나는 미처 몰랐다.
오늘 그와의 만남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게 될 줄은 그날은 몰랐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다.
그와 함께한 하루의 순간들이 영화처럼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스스로를 달래듯 중얼거렸다.
‘남편에게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우린 잠자리를 가진 것도 아니잖아.
남편도 노래방에서 아가씨들이랑 이 정도는 하겠지.’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위로했다.
나는 분명히 알았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렇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건 내 인생의 작은 로맨스이자, 나만이 간직할 수 있는 은밀한 추억이었다.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늦어요. 귀가 12시쯤 될 듯.’
나는 9시 뉴스가 끝난 뒤,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계속해서 회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잘생긴 얼굴도 아니건만, 자꾸 생각이 났다.
‘내 안에 욕망이 있었던 걸까?’
나는 본능적으로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그저 느낌이 좋았고, 그래서 받아들였을 뿐이다.
불쾌했다면 나는 거절했을 것이다.
그렇게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
현관 초인종 소리에 눈이 떠졌다.
시계는 11시 40분. 남편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말했다.
“왔어.”
그리고 곧장 눈을 감고, 잠든 척했다.
남편은 자는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오늘만은, 그와 어떤 관계도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나는 거절을 택했다.
그리고 오늘의 떨림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눈보라 치는 밤, 가슴 속의 따스한 손난로처럼.....
"그리고 나는 강렬한 여전사되는 꿈을꾸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