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도시의 아침에는 비밀이 많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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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아침 일찍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무심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언니, 좋은 아침.”

“그래, 좋은 아침.”



“언니, 휴가 가려면 펜션에서 밥을 다 준다 해도 준비할 게 있잖아요.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점심 함께해요.

언니 집에 가면 부담스러워하시니까요.”




“점심은 내가 살게.”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언니는 커피 사세요.”




밥값이든 커피값이든 결국 비슷한데, 그래 알겠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점심은 동생이, 커피는 내가.’

그렇게 정리된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걸어서 10분 거리에도 식당은 수두룩한데 굳이 차를 가지고 온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무엇인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다만 집까지 들어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점심 약속이 있으니 산책은 생략하고 집 안일을 정리하기로 했다.

운동복은 예의가 아닐 듯해 원피스에 구두를 신었다.

집을 나서자 동생이 벌써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왔으면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언니는 시간 칼같이 지키는 분이잖아요. 고마워요.”



“걸어가면 식당 많은데 굳이 차까지… 어디까지 가려고?”

“드라이브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너랑 먹는 음식이 과연 넘어갈까.?



차는 도심을 빠져나와 30여 분쯤 달렸고,

도착한 곳은 모텔촌 인근의 세미 한정식집이었다.

기이한 상황에 속이 서늘해졌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너 혹시…”

“아니에요. 여기 음식이 맛있대요. 가격도 괜찮고, 깔끔하게 나온다고요.”



말은 그럴 듯했지만, 옆에 늘어선 모텔 간판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음식은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휴가 계획을 최종 정리했다.



금요일 오전 10시 출발, 도착 후 점심. 소고기, 삼겹살, 와인,

과일 정도만 준비하고, 부족한 건 현지에서 사기로 했다.



펜션은 바닷가 근처로, 전망이 좋고 방이 다섯 개 정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정리가 끝날 무렵, 동생이 말을 꺼냈다.



“언니, 소주 한잔해요.”

“너 운전해야 하잖아.”



“두 잔까지는 괜찮아요. 밥 먹고 커피 마시면 술도 금방 깨요.”



고개를 저으며 망설이는데, 이미 시원한 소주 한 병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첫 잔을 따르고,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한 번에 들이켰다. 오랜만의 술이라 속이 얼얼했다.



“이거까지만 마셔.”

두 번째 잔도 같은 방식으로 넘어갔다.

나는 세 번째 잔을 따랐다.



“언니, 나도 마지막 한 잔만.”

“안 돼. 운전해야지.”

“괜찮아요.”



동생은 말릴 틈도 없이 술을 따르고, 혼자서 조용히 건배한 뒤 그대로 들이켰다.

나도 세 번째 잔을 마셨다.

평소 같으면 괜찮았을 텐데, 오늘은 몸이 좀 어지러웠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네. 괜히 마셨다... 눕고 싶다.”



그 말을 듣자 동생은 곧장 내 팔을 잡았다.

“언니, 차에서 좀 쉬어요.”



차에 몸을 실었다.

이상하리만치 무겁게 느껴지는 눈꺼풀,

멍한 머릿속. 동생은 차를 모텔 쪽으로 돌렸다.



“미쳤니? 혹시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아픈 언니한테 그런 짓을 하겠어요? 그냥 잠깐 쉬자고요.”



무인텔 객실로 차가 들어섰고, 나는 부축을 받아 침대에 누웠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지나 눈을 떴을 때, 샤워 소리가 들렸다.

술기운을 씻어내려는 듯했다.

문이 열리며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들어오는 동생의 모습을 본 순간,

나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그 아이를 욕망하고 있었다.
동생은 조용히 다가와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언니도 샤워해요. 정신 맑아지고 시원해요.”

“괜찮아. 나 그냥 좀 누워 있을게.”



그러자 동생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손끝이 서서히 위로 올라왔다.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 채, 나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의 손길은 망설임 없이 없었다.




어느새 원피스의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저항도 못한 채 모든 걸 허락했다.

동생은 내게 기대 앉으며 말했다.



“고마워, 언니.”



샤워를 마친 나는 소파에 앉아 혼잣말을 뱉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정말 레즈비언이 되어가는 걸까?”



내가 레즈비언은 아니라고,

이것은 단지 일시적인 호기심이라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동생의 이런 행동이 밉지 않은 건 또 무슨 이유일까.?




말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결국 다 받아주고 있는 나 자신이 문제였다.



“언니, 우리 사귀어요. 언니도 싫지 않잖아요.”



“말도 안 돼. 우리가 남이니?”

“언니, 사랑해요.”



“제발… 이러지 마. 다른 사람을 만나. 네 성향은 인정하지만, 나는 아니야.”



“언니, 매일 보고 싶어요.”



“제발, 집에 가자. 휴가 끝나면 우리… 더 이상 만나지 말자.”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침묵뿐이었다.


‘무슨 얼어붙을 사랑. 이건 아니다.’

입 안에서만 맴도는 말들이 쌓였다.

집 근처에 도착하자 동생은 천진한 얼굴로 말했다.



“언니, 잘 쉬어요.”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차문을 닫고 돌아섰다.


침대에 그대로 몸을 던지며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동생은 분명 나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집착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집착은 병이다.


서로 좋아하면 사랑이지만, 일방적인 감정은 집착일 뿐이다.


남이라면 애초에 끊어냈겠지.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생각했다.

선을 긋는 걸로는 부족하다.

완전히 거리를 두어야만,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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