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여름의 바닷가, 그리고 마지막 밤
며칠 사이 크고 작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수요일 아침, 동생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장보기 일정을 다음 날로 미루자고 했다.
목요일은 원래 오빠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동생과 함께 장을 보기로 했다.
남편이 출근한 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시쯤 만날까?”
“11시에 아파트 정문에서 봐요. 근처 마트로 가요.”
“그래. 그런데 오빠는 오늘 못 볼 것 같아. 당신 너무 보고 싶은데…
잠깐이라도 볼 수 없을까?”
“사실 나도 많이 보고 싶어. 그런데 여건이 쉽진 않네. 지금 어디야?”
“집이야.”
“그럼…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올래요? 30분만이라도.”
“그래. 금방 갈게.”
시간은 8시 5분.
오빠는 10분쯤 뒤에 출발한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8시 25분경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중간에 단속 카메라 있어요. 끝쪽에 주차하세요.”
“ㅇㅋ.”
나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조심스레 내려갔다.
주변을 살피고 오빠 차에 탑승했다.
진한 썬팅 덕분에 안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긴장을 풀고, 평온함이 찾아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로 인해 나는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날 오후,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동생남편의 시공업체 쪽에서 하자 보수 연락이 왔고,
남편은 연차를 내지 않고 동생과 내가 함께 다녀오라고 했다.
말할 수 없는 당혹감이 몰려왔다.
방은 두 개가 있었지만, 동생은 하나만 쓰자고 했다.
금요일부터 1박 2일, 어쩔 수 없는 여행이었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이 너와의 마지막이다."
간단한 짐만 챙겨 동생의 차를 타고 출발했다.
1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바닷가, 너무 오랜만에 마주한 풍경이었다.
시원한 바람과 푸른 물결, 갈매기의 날갯짓.
도시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밀려왔다.
남편 누나 집은 방이 다섯 개나 되어 여러 가족이 머물고 있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나는 혼자 바닷가를 걸었다.
조용한 해변, 붉게 물든 석양, 마치 신이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하늘.
태어나 처음으로, 이런 풍경 앞에서 마음이 무너질 듯 가벼워졌다.
"나도 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싶다."
그날 밤, 캠프파이어가 준비되었다.
고모부는 삼겹살을 굽고, 고모는 불을 지폈다.
동생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건넸다.
부담스러웠지만 웃어 넘겼다.
우리는 맥주와 와인을 나누었고, 불빛 아래 와인 잔이 반짝였다.
술기운에 노래방으로 향했다.
나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불렀고, 동생은 신곡을 을 불렀다.
애절한 멜로디가 방안을 감싸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날 밤, 방 안은 조용했다.
샤워를 하던 중, 동생이 들어와 나를 안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저 그 눈빛만이 모든 대화를 대신했다.
말없이 서로를 씻겨주고, 담배 한 개비를 나누며 입맞춤을 나누었다.
그리고 뜨겁게, 불꽃처럼, 서로를 안았다.
아침이 밝았다. 동생은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언니, 어제 왜 그랬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담배를 받아들고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거 알아요. 고마워요, 언니. 잊지 않을게요.”
말없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아무 말 없이 짐을 챙겨 고모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 차 안은 조용했다.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두 여자는 눈물만 흘렀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들, 딸, 남편이 웃으며 안겼고, 나는 웃으면서 않아주었다.
평소처럼 밥상을 차리고, 평소처럼 웃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맛있는 거 먹자.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닭찜 어때?”
나는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삶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