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도시의 아침에는 비밀이 많다

#작은 불빛 하나가 꺼지던 날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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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 햇살이 낮게 깔린 어느 오후였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00동생이… 세상을 떠났대.”

“…무슨 말이에요?

왜요?”



“자살이래.”


숨이 턱 막혔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내 머릿속에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그 뒷모습, 계단을 오르며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얼굴.

모든 것이 미안했고, 모든 것이 아팠다.



우리는 저녁 무렵 문상을 가기로 했다.

동생이 이사한 지는 열흘이나 지났지만,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으로,

이유도 모른 채 홀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왜… 왜 그랬을까.?’ 수없이 자문했다.



나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내가 마지막 기댈 언덕이 되어주지 못해서였을까.?



동생은 오랫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도,

늘 이방인처럼 외로워했던 사람이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의식은 흐려졌고, 정신은 공중에 떠 있었다.

나는 남편의 문상복을 챙겼고,

나 자신도 검정 원피스에 모자를 눌러쓰고 준비를 마쳤다.



남편이 도착했고, 차 안에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건지, 알게 됐어요?” 조심스레 물었다.



“술 마시고… 수면제를 많이 먹었다고 해.

단독주택이었대. 아이들도 전학시켰고.”




차가 장례식장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발을 뗄 수 없었다.

남편이 조용히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동생의 영정 사진이 보이는 순간, 나는 무너졌다.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앞에서 숨이 막혔다.



아이들도 나를 껴안고 울었다.

말이 되지 않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동생의 남편이 우리를 접견실로 안내했다.

우리는 말없이 마주 앉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남편이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우고,

동생의 남편이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유서였다.

“언니, 고맙고… 미안해. 사랑해요.”




단 세 줄. 하지만

그 짧은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묻어 있었던가.

종이에는 얼룩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동생의 남편은 입을 열었다.

“사실, 아내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말하지 않으셨어요?”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요?”




그는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6년을 함께한 여자… 그 사람을 제가 만났거든요."

이혼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30후반 여성이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외모며 분위기가 재수 씨와 너무도 닮아 있었어요.

혼자 사니 힘들겠거니 싶어, 5천만 원을 건넸습니다.

그 대가로는… 이제 아내와 정리를 해달라고 했죠.”



그 순간 여자는 말했다고 했다.



“아내분은 선천적인 동성애 성향이 있어요.

출산 이후 우울증과 함께 성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졌고,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그녀는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아내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고, 약에 의지해 겨우 버텼다고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재수 씨를 마주쳤어요.

너무도 닮은 모습에… 놀랐고, 두려웠습니다.

아내가 재수 씨를 향해 웃는 모습,

그 눈빛 속에서 저는 모든 걸 알게 되었어요.”




휴가를 다녀온 날, 그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확신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사를 가자고 했어요.

아내는 처음엔 거부했지만, 결국 따라왔죠.

하지만 이사한 뒤로 아내의 우울증은 더 깊어졌어요.

약도 거부하고, 매일 술에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날, 한 통 가득 수면제를 먹었어요. 종이 한 장을 남기고 말이죠.”



그의 말이 끝나자, 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마음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재수 씨 잘못이 아닙니다. 혼자 아파하지 마세요.”



그의 말이 고맙기도, 아프기도 했다.

남편이 돌아왔다.

“여보, 이제 가요.”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차창 너머로, 나는 다시금 눈물을 흘렸다.

동생은 화장되어 수목장으로 보내질 예정이라고 했다.




동생은 나를 사랑했던 걸까.?

하지만 나는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녀를 끝내 이 세상에서 밀어내 버린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결론지었다.

“동생의 죽음은… 나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몰랐고, 이해하지 못했고, 끝내 외면했다.

죄책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잊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잊어야 했다.




오늘이 지나면, 나는 동생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의 추억은,

그 모든 순간은, 조용히 내 안에서 지워질 것이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마치고, 안방에 앉아 있는 남편의 등 뒤에 안겼다.




“여보, 오늘… 원없이 사랑해줘요 .”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응, 오늘은 우리 둘만의 밤이야. 죽는 날까지 함께하자.”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 밤, 남편은 내 아픔을 말없이 안아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고, 남편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그 밤의 어둠은 깊었고, 슬픔은 조용히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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