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금요일, 영화관에서》
금요일 아침이었다.
며칠 전, 오빠가 새로 개봉한 영화가 있다며 첫 상영 시간에 보자고 제안했다.
"좋아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고, 오후 일정도 있어 극장 주차장에서 바로 만나기로 했다.
오빠가 영화광이라는 건 몰랐다.
웬만한 영화는 혼자서 다 챙겨본다고 했다.
밤에 일하는 터라 낮에는 한가로운 편이고,
그 시간에 활동적인 건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저녁 여섯 시에 출근을 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영화가 그의 취미가 된 듯했다.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영화 평론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빠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잘 맞는다.
내 일정에 맞춰줄 수 있다는 점도 고맙다.
만약 직장 생활에 얽매여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오빠는 늘 나를 배려한다.
“오늘은 예쁜 치마 입고 와.”라고 했다.
사실 나는 바지가 거의 없다.
원래도 치마를 좋아했고, 특히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다.
긴 치마는 불편하기도 하고, 신랑도 별로 안 좋아한다.
시댁 갈 때만 좀 더 단정하게 입는 편이다.
6월의 더운 날씨, 영화관의 에어컨이 그리워지는 아침이었다.
새벽에 비가 많이 내렸는지 거리엔 물이 고여 있었다.
지금은 가랑비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정도다.
와이퍼가 움직일 때마다 기분이 괜히 좋아진다.
우리는 9시 40분에 티켓박스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오빠의 차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속으로 중얼이며 나도 차를 주차했다.
검정색 미니스커트에 흰 티셔츠, 발가락이 드러나는 샌들을 신은 차림.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매가 도드라져 보인다.
스스로 거울을 보며 “괜찮다”고 느꼈던 차림이다.
오빠는 커피 두 잔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영화관 입장.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관객은 우리 포함 여섯 명뿐이었다.
우리는 맨 뒷자리 중앙에 앉았다.
오빠는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아 손을 포개며 커피를 건넸다.
영화는 미국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자연의 이야기였다.
푸른 절벽과 휘몰아치는 바다, 거대한 범선이 스크린에 등장하자 마음이 시원해졌다.
마치 바다를 향해 항해를 떠나는 기분이었다.
오빠는 특히 자연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산, 바다, 서부극, 사극도 즐겨 본다고 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오빠의 손은 내 허벅지 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를 감싸 안았다.
말없이 느껴지는 그 손길은 따뜻했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영화에 집중했다.
때로는 손길이 움직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 감각을 거부하지 않았다.
신선한 자극이였다. 감희 상상도 할수 없었다.
그 설마에 오늘 나는 녹초가 되었다. 긴장,자극 모든것이 내 취향이였다.
"한마디로 짜릿함의 극치였다."
"내가 미친년일까.?"
다만, 극장이라는 공간의 조심스러움은 늘 마음 한구석을 조이는 듯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몸속에서 무언인가 흘러내리고 있다.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빠져든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했지만, 답은 단순했다.
오빠는 특별한 사람이고, 나는 이미 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차에 올라타서 오빠와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점심을 함께 먹고 싶었지만 병원 예약이 있어 시간은 애매했다.
결국 차 안에서 20분 정도 담소를 나눈 뒤 헤어지기로 했다.
“오늘 괜찮았어?” 오빠가 물었다.
“네.”
“너랑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어.”
“저도요.” 나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주차장을 나서며 빗방울이 유리창에 떨어졌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오늘 영화관에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를 흔드는 이 감정의 파도 속에서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나쁜 여자일지도 몰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출장 가는 동안, 오빠와의 시간을 상상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도,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이니까,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남편은 저녁에 일찍 들어왔다. 표정이 좋지 않다.
“무슨 일 있어요?”
“도쿄 박람회 출장 가래. 7박 8일.”
“갔다 오면 되지. 좋은 기회잖아요.”
남편은 내 말을 흘려들으며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나도 그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밤이 되자, 남편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받아주었다.
서로의 방식대로, 서로의 방식만큼 사랑했다.
그리고 다음 주, 오빠와 함께 산에 가기로 했다.
약수터가 있는 조용한 산길을 함께 걷는 것도 좋겠지.
물론, 비가 온다면 그마저도 또 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베란다에 서서 비를 바라본다.
내 삶의 흔들림과 욕망, 후회와 기대가 비처럼 천천히 흘러내린다.
그래도 나는, 오늘을 살아냈다.
그리고 어쩌면, 내일도 잘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