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작은백합

#은밀한 해방

by 전태현 작가
ChatGPT Image 2025년 9월 6일 오후 06_02_46.png




#수아의 독백




여름이 저물어가던 무렵,

회장님과 나는 새 집으로 이사했다.



8월 하순의 공기는 여전히 뜨겁지만,

저수지 위로 스쳐오는 바람에는 어느새 선선한 기운이 묻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네 살, 회장님은 일흔하나였다.



그로부터 흘러간 11년의 세월.
주름진 시간의 결을 손끝으로 느끼면서도,

이렇게 조용히 흐르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차에서 내려 회장님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서니,

직원들이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대문을 지나면 호수 같은 저수지가 잔잔히 펼쳐지고, 물가의 나무들은 고요하게 서 있었다.
집은 소박했지만, 은근한 품격이 스며 있었다.



방 두 개와 거실, 주방, 욕실 하나.
마당엔 잔디와 정원수가 드문드문 자리해 있었고,

울타리로 둘러싸여 외부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나는 그 울타리를 보며, 비밀스럽게 숨을 곳을 발견한 아이처럼 안도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회장님에게서 받은 것은 많았다.

부와 지위, 그리고 돈.
무엇보다 안정된 생활.
그러나 그 모든 것 속에서도, 내 삶에 스며든 공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랑과 안락함이 충족되어도,

여자의 욕망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서서히 깨달아갔다.



회장님은 나를 사랑했지만, 그의 나이와 육체의 한계는 분명했다.
육체적 친밀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제야 알았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마음을 이해 할수 있었다.
욕망은 여전히 살아 있는데, 채워지지 않을 때 찾아오는,

그 공허의 무게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수가 없다.



나는 밤마다 소리 없이 울곤 했다.
엉엉 울 수도

감히 외칠 수도 없었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흘린 눈물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언젠가 회장님은 그런 나를 보았다.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
실망도, 질투도 아니었다.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게 말했다.



“한 달에 이삼일쯤은… 원하는 곳에 다녀와.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다만, 돌아와 내 곁에 있어주면 된다.”



그 말은 단순한 허락이 아니었다.
내 안의 갈망을 이해하고 존중하겠다는 고백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그때 나는 마흔을 갓 넘겼을 무렵이었다.



많이 울었고, 그 울음 속에서 그는 나를 안아주며 속삭였다.
“미안하다.”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비난받지 않고 받아들여진 날이었다.



다음날 아침.
얇은 코트에 힐을 신고, 작은 가방 하나를 들었다.

필요한 건 언제든 카드로 살 수 있으니까.



마음속 깊은 공허를 불태우러 떠나는 길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해,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택시에 몸을 실었다.



군인들이 많다는 진해. 그곳으로 향했다.



창밖의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짐했다.
오늘은 내 안의 욕망을, 화산처럼 쏟아낼 날이라고.

오후 두 시, 진해에 도착했다.




거리를 걸어가는 군인들.
단정한 머리, 단단한 체격, 햇볕에 그을린 피부.
그들의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현금과 수표를 준비해두었고,

택시기사에게 택시비 외의 사례를 더 건넸다.



그는 마흔 후반쯤 되어 보였고, 운동선수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국밥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은밀한 눈빛을 교환했다.



호텔 문이 닫히자, 내 몸과 마음은 점점 자유로워졌다.
강렬하면서도 품격 있게, 내 안의 공허와 욕망이 해소되었다.
그는 나를 존중했지만 동시에 완벽히 만족시켰다.



시간이 멈춘 듯한 두 시간. 아니, 온 우주가 멈춘 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짐승 같았다.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몸속을 꿈틀거렸다.


그 후 그는 떠났다.



호텔 침대에 홀로 남은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덧 저녁 여덟 시.
샤워 후 담배 한 모금에 눈을 감았다.
몇 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공허와 외로움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그제야 알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남자든 여자든, 사랑과 욕망을 동시에 느끼고,

그것을 충족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밤이 깊어졌다.

나는 번화가의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거리의 불빛 아래, 스쳐 지나가는 남자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꼈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서, 내 심장은 두근거림으로 가득 찼다.



은은한 조명 아래, 음악은 심장을 두드렸고, 술은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했다.
남자들의 손길이 스치자, 몸속 깊은 갈망이 폭발했다.
향수와 땀, 술의 향이 뒤섞여 황홀감에 빠졌다.


내 안의 불꽃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새벽까지 격렬하게 몸을 혹사한 뒤에야 나는 지쳐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지난밤의 장면들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다.
일어나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환상들.
나는 활처럼 몸을 움츠리며 그 밤의 잔향을 붙잡았다.
본능에 충실했던 남자들의 그림자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것이 이상할 만큼 달콤했다.



그날 오후,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회장님이 준 자유, 내가 내린 선택,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욕망.


그 모든 것이 얽혀, 내 마음은 이상할 만큼 충만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피어 올랐다.


잊을수 없는 일탈이였다.

이전 05화제25화. 작은백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