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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밤의 파김치 담그기

by 박재옥


파김치에서는 눈물 맛이 났다

오랫동안 조선 여인들의 주식이었던 눈물

밤늦게 퇴근한 아내와 마주앉아서

시장 할머니에게서 사온 쪽파를 다듬는다

파김치를 담그는 일은 눈물로 눈물을 담그는 일

이 밤이 아니고서는

파김치를 담글 수 없을 것만 같은

피곤을 피곤으로 풀어야 하는 필연 앞에서


아내는 연신 눈물을 뿌린다

쪽파가 아리고 매운 탓만은 아니다

아내의 몸 여기저기에 인 박혀 있는

지나간 날의 남루

씨줄과 날줄로 겹친 피로에

아픈 몸이 누덕누덕하다


환절기에 파김치가 땡기는 것은

몸이 계절을 앓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멸치액젓에 절여져 숨이 죽어있는

아내의 피폐한 시간들은

언제 다시 비 맞은 파밭처럼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 싱그러워질 것인가


아픔도 우리가 품고 사는 무지개일지 모른다

이미 바닥난 몸이지만 파김치의 아린 맛 상상에

입맛이 다시 환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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