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중심 대 중심의 만남

by 박재옥 시인


고성 건봉사(乾鳳寺)로 금강산 발바닥 냄새라도 맡아보려고 찾아 갔던 날, 숯가마처럼 벌겋게 달궈진 절간을 둘러보느라 땀 뻘뻘 흘리며 요사채 행랑 툇마루에서 쉬고 있는데, 웬 낯모르는 중늙은이가 다가오더니 “이 쪽으로 올라가면 적멸보궁이 나옵니까?” 묻기에 아는 바 없으면서도 만사 귀찮은 턱짓으로 끄덕거렸더니, 바로 위쪽으로 사라지더라 달궈진 몸을 식히고 나서 아내에게 그리로 올라가면 정말로 적멸보궁인가, 뭔가가 나타난다 말이지? 하니 더위 먹은 아내는 늙은 암캐처럼 널브러져서 그냥 주저앉아 있겠다 한다 청사마귀 같은 어린 딸래미가 따라 가겠다 하여 돌계단을 힘들게 올라갔더니 붉은 원형 대문이 호구(虎口)를 딱 벌리고 있더라


적멸보궁에는 적요의 햇살이 뜨겁게 고여 있는데, 건물 중앙 금빛 원(圓)의 통유리문 안에서 웬 카리스마 짱짱한 고승이 직벽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서 법문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상이 있어야 할 자리의 벽면은 직사각으로 구멍이 뻥 뚫려 있고, 그 너머로 천년 이끼 품은 죽은 부처의 사리탑이 버티고 서 있더라 산 부처가 죽은 부처를 향하여 경을 하는데, 그 뜻을 알 수는 없으나 사무침이 통절하여 저 높은 곳의 음성이더라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는 두 그루 붉은 꽃나무여! 중심 대 중심의 만남 둘 사이에 흐르는 강력한 전류에 밀려 나 같은 주변은 뒤로 흠칫 물러설 수밖에 없는, 주변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중심의 파장(波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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