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즐거운 왕릉

by 박재옥 시인


밤이면 왕릉이 깨어난다

공원은 후대가 조성해준 마당

능의 주인은 불빛들과 희롱하며 논다

낄낄거리며 깔깔거리며

살아서 누려보지 못했던 호사를 누린다

묘혈 안에서 어주라도 한 잔 걸치고 나온 날이면

면류관을 비뚜로 쓴 채 옷고름 풀어헤치고,

밤의 잔디밭을 달린다

낄낄거리며 깔깔거리며

눈물처럼 쓸데없는 소모품이 없다는 게 평소 지론

능의 주인은 지극한 슬픔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죽음이 목전에 오더라도 희희낙락하라고 당부했건만

거룩한 왕의 농담으로만 치부했을 뿐

한지 위에 쓰여진 역사는 탁상공론의 기록

충절을 강요한 적이 없었으나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했던 맹신들은

앵무새 충절을 중얼거렸고,

정절을 강요한 적도 없었으나

여린 살점에 상처라도 날까 겁먹은 시녀들은

스스로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고 치를 떨었다

간절했던 웃음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빗나간 웃음이 이제야 빵빵 터진다

낄낄거리며 깔깔거리며

죽은 뒤에 만끽하는 홀가분함은

누구의 것도 아닌 짐의 것

공원으로 몰려드는 시민들이 즐겁다

아이들 재롱에 빵빵 터진다

역적모의를 닮은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태조 할아버지도 역모로 등극하셨던 분이시지

옷고름 풀어헤치고 뛰어다니는 쫄깃함

왕릉은 결코 근엄하지 않다고

내놓고 자랑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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