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없었더라면
겨울 여신의 희고 뭉툭한 종아리가 영감처럼
퍼뜩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아무 생각 없던 아내를 꼬드겨 육거리 시장가서
무 쪽파 갓 마늘 삭힌 고추를 사다가
영혼을 톡 쏘는 초정약수를 퍼붓지 않았더라면
투명하게 익어가던 간절한 시간이 없었더라면
마음까지 혹독했던 이 겨울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새벽공기처럼 청량한 동치미 무를 썰어
아삭아삭 소리 내어 씹어 먹지 않았더라면
오로라처럼 영롱하게 익은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지 않았더라면
분수처럼 쏟아지는 기쁨의 쪽파를 곁들이지 않았더라면
삭힌 고추를 깨물면서
매운 속울음을 토해내지 않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