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추석날이었다
차례를 마치자마자 새로 사준 신발을 신고서
고향 언덕길을 달려 내려갔던 것은
언덕 아래 옥수수 밭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튀어나온 문둥이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피해볼 겨를도 없이
흐물흐물 썩어 문드러진 슬픈 낯이었다
문둥이의 커다란 눈길을 보고 말았는데
그 속에는 뭔지 모를 서글픔과 측은함의 흰 구름이
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때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도망치고 말았지만
해마다 추석이 되면 추억처럼 문둥이가 떠올랐다
천형의 육신으로는 고향에도 가보지 못했을
슬픔의 징역을 살았던 한 사내의 얼굴이
전염되어 왔다
이제는 나도 일가친척 흩어져서
고향 갈 처지도 못 되고 마니
추석날 둥근달 보면
문둥이 눈에 흐르던 서글픔과 측은함의 흰 구름이
나에게로 흘러오는 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