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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명절

by 박재옥


어릴 적 추석날이었다

차례를 마치자마자 새로 사준 신발을 신고서

고향 언덕길을 달려 내려갔던 것은

언덕 아래 옥수수 밭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튀어나온 문둥이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피해볼 겨를도 없이

흐물흐물 썩어 문드러진 슬픈 낯이었다

문둥이의 커다란 눈길을 보고 말았는데

그 속에는 뭔지 모를 서글픔과 측은함의 흰 구름이

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때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도망치고 말았지만

해마다 추석이 되면 추억처럼 문둥이가 떠올랐다

천형의 육신으로는 고향에도 가보지 못했을

슬픔의 징역을 살았던 한 사내의 얼굴이

전염되어 왔다

이제는 나도 일가친척 흩어져서

고향 갈 처지도 못 되고 마니

추석날 둥근달 보면

문둥이 눈에 흐르던 서글픔과 측은함의 흰 구름이

나에게로 흘러오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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