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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Dec 15. 2023

인연


  인간은 살면서 숱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던 인연도 연이 다하면 한낱 흩어지는 먼지와도 같다. 원래부터가 없었던 듯 그렇게 제 갈 길로 헤어진다.    

  

  금방까지 내 손안에 들었던 그릇이 한 순간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몇 년간 손에 길들여졌던 그릇이다. 아끼던 그릇이라 아쉬움이 더하다. 하지만 이 또한 인연이 다하였으므로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는 공(空)의 이치로 받아들일 밖에는. 하물며 무생물도 그러할진대,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이별은 더욱 비밀스런 인연법이 깔려 있으리라.     


  우리는 매 시간마다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와 스치듯 지나간다. 그 스쳐가는 만남 속에서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의외의 장소에서 알고 있던 누군가와의 우연찮은 만남은 묘한 인연의 힘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오늘 내 발 밑을 스치고 간 풀벌레들이 그러하고, 금방 눈 마주치며 지나간 길고양이도 그러하겠다.    

  

  그중 가족의 인연을 곰곰이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그물로 얽힌 인연들은 다름 아닌 전생 인연의 씨앗들이지 않을까. 오히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가장 힘든 인연을 만난다고도 한다. 즉 전생에 선인연의 씨앗을 뿌렸다면 이생의 가족은 선인연이 될 터이고, 아니면 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지금 나의 가족과의 인연이 어떠한지, 내 마음 속의 행복지수를 매겨본다면 쉽게 그 인과를 짐작할 수 있겠다. 이는 내가 뿌려 둔 씨앗이니 그 누구를 원망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다만 다음 생의 씨앗을 이생에 다시 심어야하는 것이니, 뒤바뀌는 악연만은 심지 말아야하겠다.

     

  소위 금수저라 일컫는 이들이 있다. 좋은 부모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야말로 참말로 복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가진 자가 있으면 못가진 자가 있기 마련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서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얻은 행운이라며 비아냥거릴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들은 전생에 뿌려둔 선업의 대가로 이생에 톡톡히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이 그들의 선과(善果)를 악과(惡果)로 물들이지만 않음에야.

    

  인연법은 불교 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도 전생과 현생의 인연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종종 방영되곤 한다. 또한 전래동화나 고전 소설의 단골 모티브이기도 하다. 그 인연이 어디 좋은 인연만 있으랴. 인연의 굴레는 업의 인과因果에 따라 주거니 받거니 굴러가는 법이다. 오늘도 내 소맷자락을 스치고 지나간 인연이 얼마나 많은가. 그 인연들이 다음 생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오늘 나는 어떤 인연의 씨앗을 뿌렸는가. 설령 오늘의 만남에서 뼈를 깎는 대가를 치렀을지라도, 더 좋은 만남을 위하여 이 또한 귀한 선인연의 씨앗으로 바꿔 나가야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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