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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Dec 16. 2023

끝, 그리고 시작 1.

  마치 컴컴한 동굴과 같다. 기다란 복도는 음습한 어둠이 깔려 있다. 멀리서 전광판 불빛만이 이쪽이라는 듯 깜박거린다. 갑자기 쪽머리가 송곳으로 쑤시듯 아파온다. 혼자 쭈뼛거리다 유령처럼 복도를 빠져나왔다.  

   

  전광판에는 먼 길 떠나는 이들의 이름이 마지막 인사를 고하고 있다. 이층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아마 이승을 떠나는 이들의 인연들일 것이다. 이층으로 엉거주춤 올라서자, 낯익은 얼굴 너 댓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만으로도 금방 알아차리겠다. 딱 삼십 년만이다.      


  시간이 정말 강물처럼 흘러가버렸다. 결혼과 동시에 내 삶의 반경은 대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먼 길 떠나는 J와는 같은 학과 친구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에다 모범생이기까지 했다. 친구들 사이에도 부류가 있었다. 굳이 나누자면 강남파, 학구파, 지방파등. 그녀는 강남파였다. 강남파 친구들은 어딘가가 남달랐다. 근접하기 힘든 벽마저도 느껴졌다. 그미들은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만 걸쳐도 멋스러웠다. 아니 먹는 물부터가 다른 지도 몰랐다. 


  졸업 한 지도 이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J가 대구에 내려와 산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까스로 연락은 닿았으나, 폰 너머로 들리는 J의 목소리가 왠지 반갑잖은 눈치였다. 얼굴 한번 보자는 제안에도 다시 연락한다는 말만 남겼다. 서운한 마음에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엿보다가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머리에는 두건을 두른 채 병색이 완연했다. 사진 뒤 배경에는 Y대 병원이 높다랗게 버티고 서있었다. 그 후 J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다. 

.

   J가 문득 생각난 건 그로부터 또 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동안 나에게도 많은 굴곡이 있었다. 느닷없이 사업을 시작했더랬다. 사업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돈의 대가만큼 눈물도 마를 새가 없었다. 새벽 두어 시에야 귀가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것은 오롯이 나만의 몫이었다. 모든 것을 갖춘 판도라 상자는 애초부터 없는 것 같았다. 하나가 차면 또 하나는 기울기 마련이었다. 

     

  어느 날 문득 J가 떠올랐다. 가끔씩 보내던 안부문자도 그만둔 지가 벌써 몇 년은 된 듯싶었다. 그제야 부랴부랴 문자를 넣었다. 사실 폰을 누를 용기는 차마 없었다. 의외로 바로 연락이 왔다. ‘그래 이제는 봐야지.’ 어느덧 둘 다 오십 중반을 지나버렸다. 삼십 년 만에 보는 친구에게 기죽지 않으려 까짓것 치장도 하고 나갔다.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 껴안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사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보다 삼십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무사히 건너온 동지애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J를 안았을 때 순간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얼른 손을 풀고 말았다. 손끝에 닿은 그녀의 등이 마치 마른 등걸 같았다.      


“그동안 좀 많이 아팠어.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인 줄 알고 아이들 끌어안고 울면서 기도까지 했었지. 이제 조금 괜찮아졌지만……. 매일 한 시간씩 걷는단다. 그래도 운동 덕에 버티는 것 같아.”

“따뜻한 봄에 우리 손잡고 나들이 가자꾸나. 얼른 얼른 나아라.”

“그래 그러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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